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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춤꾼’ 日 스님이 되다

입력 : 2009-07-28 17:25:16 수정 : 2009-07-28 17:2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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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대일사 주지 ‘승무명인’ 한국무용가 김묘선씨
◇한국인 무용가 김묘선씨는 일본에서 삭발하지 않은 최초의 스님이 됐다. 일본 양대 종단의 하나인 진언종은 세계적인 무용가인 그의 활동을 인정해 장발을 허용했고 법명도 본명을 그대로 쓰도록 했다.
그가 ‘승무’를 추지 않았더라면 스님이 되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국 승무와 살풀이춤의 전수교육조교(준문화재)로 지난 4월 일본 천년사찰의 주지 스님이 된 한국무용가 김묘선(52)씨. 그의 춤에 반한 ‘대일사’(大日寺) 주지 오구리 고에이 스님과 부부의 연을 맺고 2007년 별세한 남편의 뜻을 이어 스님이 된 것을 그저 ‘운명’이란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제자의 주지 취임식에 참석한 그의 스승 이매방 선생은 “나는 스님이 안 돼 봤는데, 네가 진짜 스님이 됐으니 승무를 춰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눈물을 흘렸다. 전화 인터뷰를 통해 만난 김씨는 “과거 일본에 불교를 전파했던 백제 승려들처럼 승려와 무용가로서 한국과 일본 간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춤과 종교수행은 둘이 아닌 하나=일본에서 스님은 결혼할 수 있고 사찰은 세습되는 개인자산인 까닭에 김씨가 남편의 뒤를 이어 스님이 되겠다고 했을 때 주변의 반대는 극심했다. 대일사는 진언종 산하 일본 시코쿠(四國) 지역의 88개 유명 사찰 중 하나로 최근 일본에서 큰 인기를 모으는 ‘시코쿠 불교 성지순례’의 핵심코스다. 연간 30만명의 순례객이 참배를 오는 고찰을 외국인 여성에게 맡기지 않겠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먼 일가에선 종단에 투서도 보냈다. 하지만 매일 두세 시간만 자며 시험 준비를 했다는 그는 8개월 만에 스님 자격시험을, 1년 만에 주지 자격시험을 통과하며 주변의 반대를 잠재웠다.

춤으로 한일 문화 가교 역할을 해온 그는 “춤과 수행은 둘이 아닌 하나”라고 했다. 춤은 불교의식 수행을 돕고 승려의 삶은 춤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실기시험 중 450개의 작법(불교의식의 골자인 재(齋)를 올릴 때 추는 모든 춤의 총칭)시험이 있는데, 무용 덕을 봤다. 또 스님이 된 후 추는 승무는 이전과 다른 세계를 열어줬다. “‘승무’는 속세를 버리고 스님이 되는 과정의 번뇌를 잊기 위해 법고(북)를 두드리는 청년의 마음을 그린 춤인데, 그 춤 속으로 들어간 셈”이라면서 “승복을 입으니 걸음걸이도 달라지고 저절로 손이 올라간다”고 했다.

스님과 결혼한 이후에도 해외 공연과 한국을 오가며 춤에만 몰두했던 그가 스님이 된 것은 남편과 아들의 간곡한 청 때문이다. 남편은 “당신은 무용가로서 성공했으니 이제 스님 자격을 따놨으면 좋겠다”는 말을 유언처럼 남기고 2시간 후에 뇌경색으로 쓰러져 운명했다. 평소 한국말로 대화하며 “난 한국사람”이라고 밝히던 열살 난 아들은 아버지의 죽음 후 “아빠처럼 스님이 되겠다. 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엄마가 절을 지켜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두 살 때부터 법당에서 경을 공부해온 아들한테 ‘반야심경’을 배웠습니다.”

◆순례자들 위무해줄 수 있는 승려 될 것=버선발에 피가 배어날 정도로 연습벌레였던 춤꾼의 굳은살은 수행의 기초체력이 됐다. 그는 주지에 취임한 이후 매일 새벽 3시에 일어나 법당에 불을 밝히고 법회를 준비하는 일이 “평생 해온 듯 편하다”고 했다.

2005년 이매방의 전수조교로 선정됐고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 일본 간사이 지부회장을 맡은 그는 현재 미국 UCLA대학 교환교수로 한국 춤을 가르치고 있다. 오랜 강의 경력 덕에 마이크만 잡으면 술술 말이 나온다는 그의 설법을 듣고 나면 사람들이 눈물을 흘린다. 그는 “대단한 깨달음을 전하는 것은 아니지만 내 진솔한 삶의 이야기만으로도 울림을 주는 모양”이라고 해석한다.

특히 NHK 및 민간 지방 방송사에서 지난해 봄부터 그를 주인공으로 한 ‘주지 스님은 춤꾼’이라는 제목의 다큐멘터리를 일본 전역에 방영하면서 그는 대일사의 보물이 됐다. 다큐를 본 참배객들이 함께 기념사진을 찍어 달라는 요청이 끊이지 않는다. 교도소의 수인들로부터 편지도 받고 영화제작사로부터 영화제작 섭외도 받고 있다. 그는 “무용 인생이 거울을 들여다보는 삶이었다면 주지는 창문을 내다보는 삶”이라고 표현했다. “주지는 사람들의 가슴앓이를 들어주고 풀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엔 거울을 통해 내가 잘되기만 기원했다면 이제 창문으로 지나가는 아픈 사람들을 위무하고 싶어요. 비에 젖고 바람에 흔들리며 몇 달씩 순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읽기 위해 나를 버리다 보니 홀로 눈뜨는 아침조차 평온하게 느껴집니다.”

생활불교인 일본 사찰은 마을의 경조사를 주관하며 삶과 죽음에 관계한다. 옛날엔 사찰이 지역 주민의 족보와 호적을 관리하며 스님이 있어야 제사와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김씨가 주지로 있는 대일사와 부속 국중사는 300개 가정을 관리한다. “승려들의 역할은 산속에 은둔해 도를 닦고 성불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결혼식과 장례식, 제사, 탄생일에 직접 가정을 방문해 법회를 열어준다”고 했다. “한국의 장례문화는 시신을 병풍 뒤에 차단해놓고 무서움의 대상으로 취급합니다. 일본은 입관 때까지 ‘시신’이 아닌 ‘환자’로 여기며 기도를 올리죠. 유가족들도 울고불고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데, 생활 속에 깃든 불교사상의 힘인 것 같습니다.”

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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