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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철 칼럼] ‘돈키호테’처럼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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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7-27 15:32:18 수정 : 2009-07-27 15:3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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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인이 아닌 영원한 자유인

잘못 해석된 돈키호테 너무 많아
“그다지 오래되지 않은 옛날, 이름까지는 기억하고 싶진 않은 라만차 지방의 어느 마을에 창꽂이에 꽂혀 있는 창과 낡아빠진 방패, 야윈 말, 날렵한 사냥개 등을 가진 시골 귀족이 살고 있었다.” 1605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출판된 최초의 근대소설 ‘돈키호테’의 시작 부분이다. 돈키호테는 모든 인간이 꿈꾸어 왔고 토머스 모어가 구체화했던 이상향 ‘유토피아’를 미겔 데 세르반테스가 소설 형식을 빌려 풍자한 인류 최고의 걸작이다.

돈키호테가 처음 출판됐을 때 이 작품은 한 미치광이의 기상천외한 모험을 다룬 소설로 많은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모든 걸작이 그러하듯 낭만주의 시대에는 집단적 불의에 항거하는 자유로운 개인으로, 그리고 실존주의 시대에는 ‘실존이 본질에 선행하는’ 인간의 전형으로 읽히는 등 시대에 따라 이 작품의 해석도 달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서 돈키호테는 어딘가 모자라고 비정상적인 사람으로 통용되는 경우가 많아 아직 400년 전의 이미지가 고착돼 있는 것 같다.

돈키호테가 살던 17세기의 스페인은 절대군주제 하에서 종교와 표현과 양심의 자유가 없고, 한번 귀족은 영원한 귀족으로 세습됐으며, 귀족과 평민은 영원한 평행선을 그리면서 그 경계를 넘을 수 없었다. 그러나 서슬이 퍼렇던 절대왕정시대에 돈키호테는 가히 혁명적인 사상을 통해 이미 동트기 시작한 근대성을 설파한다. 그렇기에 21세기 오늘날의 모든 현대인에게 ‘돈키호테같이 살자’라는 화두를 던지고 싶다. 그 이유를 몇 가지만 나열한다.

첫째, 돈키호테는 그 어떤 선험적 가치에 의해 지배되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움직이는 영원한 자유인이다. 따라서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는 인간의 ‘자유의지’일 것이다. 둘째, 그렇기에 모든 인간은 자기 스스로 흘린 땀을 통해 자신의 가문과 혈통을 만들어내야 한다. 돈키호테가 말했듯이 혈통은 땀이 만드는 것이지 대물림되는 것이 아니다. 이는 궁극적으로 당시의 귀족과 왕족의 세습제도를 질타하는 근대정신이 아닐 수 없다. 셋째, 돈키호테에는 만인 평등사상이 지배한다.

그러나 우리가 돈키호테에게서 배울 최고의 교훈은 바로 어떤 시련을 당해도 결코 좌절하지 않는 불굴의 도전정신이다. 세르반테스는 레판토 해전의 전쟁영웅이면서도 그의 삶은 부당한 대접과 감옥살이로 점철된 불운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그는 작품을 통해 견디기 힘든 척박한 시대를 살지라도 한 번뿐인 삶을 정직하고 용기 있게 개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고통이 온다 해서 절망에 빠지는 것이야말로 진짜 불행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희망과 꿈을 버리지 않는 돈키호테의 내면적 모습이야말로 그의 진면목이고, 이런 점에서 그는 미치광이가 아니라 우리의 스승이라 일컬을 만하다.

한 예로 모든 것이 잘 정돈돼 있고 합리적으로 굴러가는 것처럼 보이는 미국사회도 400여년 전 돈키호테가 출간됐을 때는 온갖 갈등과 불평등한 요소로 가득 차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돈키호테와 마찬가지로 어떤 것은 땀과 노력으로, 또 어떤 것은 유머와 인내로 풀어나가는 미국인의 지혜가 미국의 힘인 것 같다.

요즘 우리 국회를 담은 신문 기사에 등장하는 단어를 보면 ‘점거’, ‘진격’, ‘육탄돌격’, ‘저지’ 등 군사용어 일색이다. 타협과 소통의 예술을 국민에게 보여주어야 할 국회에서 일체의 타협과 대화가 실종된 모습은 그 자체가 민주주의의 후퇴이고 국민의 정신건강에도 해악을 끼치는 것이다. 법과 원칙을 지키며, 의견이 팽팽할 때는 다수결에 의해 소통하는 길을 만드는 합리적인 제도가 진정한 민주주의이다. 돈키호테가 바라는 세상도 자유와 정의를 바탕으로 한 근대 민주주의 정신 바로 그것이었음을 상기한다.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에는 잘못 해석된 돈키호테가 너무 많이 살고 있기에 심히 걱정된다.

한국외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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