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회의록상 증거 없다" 기각 민주당 등 야권이 23일 “미디어법 통과는 원천무효”라며 헌법재판소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고 김형오 국회의장을 상대로 권한쟁의심판까지 청구하면서 헌재 판단에 이목이 쏠린다.
헌재는 국회 본회의장 표결 절차를 둘러싼 의원과 의장 간 권한쟁의 사건을 여러 번 다뤘으나, 대체로 의장의 자율권 쪽에 무게를 싣는 결정을 내려왔다. 이번 사안의 경우 대리투표 의혹 등 그간 제대로 다뤄지지 않은 새 쟁점이 있어 결과 예측이 쉽지 않다.
대리투표가 처음 주요 쟁점으로 등장한 것은 노무현정부 시절인 2005년 12월9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뤄진 사립학교법 개정안 강행 처리 때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법안 통과 직후 김원기 당시 국회의장을 상대로 헌재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며 “의장석 주변을 점거한 열린우리당 의원 일부를 대신해 대리투표가 이뤄진 만큼 표결 결과는 무효”라고 주장했다.
정치권은 대리투표 의혹을 놓고 거센 공방을 벌였으나 정작 헌재에선 핵심 쟁점으로 부상하지 못했다. 헌재 전원재판부는 지난해 4월 재판관 7 대 2로 한나라당 청구를 기각하며 “(청구인들이) 대리투표 의혹을 제기하고 있으나, 단지 추측에 불과할 뿐 회의록상 이를 인정할 아무런 증거가 없으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김종대·이동흡 재판관이 위헌 취지 소수의견을 냈으나 이들은 대리투표 논란에 말을 아꼈다. 두 재판관은 “의원 간 자유로운 질의나 토론 없이 법률안을 가결해 선포한 행위 자체가 의회민주주의와 입법절차의 본질적 내용을 훼손한다”고 판단했다.
만약 대리투표가 이뤄진 사실을 입증하는 명백한 물증이 헌재에 제출된다면 향후 재판 과정에서 중요 변수가 될 것임을 예상할 수 있다.
다만 헌재가 민주당의 권한쟁의심판을 받아들일지와 미디어법이 무효로 되는지는 별개 문제다. 헌재는 김영삼정부 시절인 1996년 12월26일 여당 의원끼리 모여 노동관계법, 안기부법 개정안 등을 가결시킨 사안과 관련, 이듬해 7월 “야당 의원들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고 결정하면서도 “가결 선포 행위 자체는 무효가 아니다”고 법률 효력을 인정했다.
김태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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