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리허설이 ‘긴장’되고, 무대는 ‘축제’다. 지휘자에게 처음 오케스트라를 만나러 가는 길은 떨림이다. 그 곡을 수백 번씩 연주했을 단원들에게 새로움을 보여주지 못하면 지휘봉은 그야말로 허공만 가를 뿐이다. 지휘자 여자경(37)도 첫 리허설을 하러 갈 때는 모든 게 조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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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국제지휘콩쿠르에서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3위에 입상하며 화제를 모았던 여자경은 올봄 ‘예술의전당 교향악 축제’에서 20년 만에 처음 여성 지휘자로 무대에 오르며 다시 한번 주목을 받았다. “음악계에선 여성 지휘자는 더 이상 이슈가 아니다”라며 쑥쓰러운 웃음을 지은 그는 “무대에서 만들어내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했다. |
그 역시 밤이고 새벽이고 악보를 펴들고 박자, 템포, 음정을 분석한다. 작곡가의 의도를 알아내는 것부터 시작해 악보를 머릿속에 집어넣는 작업이 지휘자에겐 ‘연습 시간’이다. 지휘봉 대신 연필을 붙잡고 지내는 시간이 더 많단다. 오케스트라가 지휘자에게 악기라면, 실제 소리를 내는 연습은 리허설이 전부. 그 짧은 순간에 제 소리를 내려면 “‘카리스마’가 아니라 ‘설득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단원들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도록 공감대를 잘 만들어놔야 좋은 소리가 나온다.
그의 다부진 지휘봉은 오페라 ‘마술피리’를 준비 중이다. “지휘를 시작한 게 오페라 때문”이라는 그는 “그래서 어떤 무대보다도 지휘봉이 신났다”고 했다. 오케스트라 연주와 성악, 거기에 연출까지 섞어 무대에 펼쳐놔야 하기에 지휘봉이 바쁘다. 성악가, 단원 모두 그의 손끝만 바라보고 있다.
“오페라에선 실력뿐만 아니라 분위기 파악도 잘 할 줄 알아야 해요. 성악가와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조화가 중요하죠. 일단 연습시간부터 맞추기가 쉽지 않아요. 성악가한테는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아침 일찍 연습할 수도 없고, 당일 (목소리) 컨디션에 따라 연습 여건도 달라지거든요.” 무대에 오르기 전까지 이처럼 손이 많이 가는 것이 오페라 지휘다.
낮은 피트석에선 무대에서 날아오는 먼지와도 싸워야 한다. 그래도 오페라의 매력은 이 고단함을 잊게 한다. 한양대에서 작곡을 전공한 뒤 대학원 석사과정(지휘)을 마치고 2000년 오스트리아 빈 국립음대에 입학한 뒤 레오폴트 하거 교수를 사사하면서 그와 오페라의 연은 더 깊어졌다. 빈 국민 오페라극장의 지휘자 겸 오페라 코치로 일하면서 오페라에 푹 빠져 지냈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 이제 6개월째, 처음으로 선사하는 오페라 무대다. 이번 무대에서 그의 해석은 ‘원전 연주’에 향해 있다. 독일어의 정확한 발음과 당대에 연주됐던 박자, 템포를 그대로 살려 ‘마술피리’의 본래 맛을 전한다는 계획이다.
연습 때마다 그도 짐이 한가득이다. 지휘봉은 가방 안에 ‘쏙’ 들어가지만 두툼한 악보는 ‘보따리’를 따로 준비해야 한다. 지휘봉이 가볍다고 해도 장시간 휘두르다보면 손목이 아파 주로 나무로 제작된 것을 사용한다. 지휘봉만 100여개가 있다.
“바이올린 브리지를 만드는 나무와 와인 코르크 마개를 연결해서 지휘봉을 만들었는데 잘 빠져서 지금은 직접 만든 지휘봉 대신 그냥 구입할 걸로 써요. 지휘봉도 균형이 잘 맞는게 좋은 거예요. 손에 올려놓고 중심이 잘 잡히는지 확인해보죠. 그게 잘 잡혀 있어야 바람을 가르는 느낌을 제대로 살려내요.”
언젠가는 상임 지휘자가 되는 게 바람이다. “지휘자라면 오케스트라에 자기 색깔을 심고 싶죠. 어떤 지휘자들은 악기 자리 배치를 바꿔서 컬러를 내기도 해요. 제 경우엔 자리까지는 바꾸지 않는데 편성이 큰 곡을 좋아하죠. 편성은 관악기 수로 따져요. 주로 2관 편성이 많고 3관 편성일 경우 80∼100명은 올라가죠.”
그의 지휘봉이 국내 무대에서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지휘 맛은 어디 있을까 궁금했다. 건네받은 지휘봉으로 살짝 휘둘러봤는데도 지휘봉 끝에서 갈라지는 공기가 달랐다. 지휘봉에 실려 있는 권력이냐고 묻자 “그거에 심취하면 좋은 연주가 나오기 힘들다”는 답이 돌아왔다.
“좋은 오케스트라, 나쁜 오케스트라는 없는데 좋은 지휘자, 나쁜 지휘자는 있어요. 좋은 소리를 이끌어 내는 게 지휘자 몫이죠. 그래서 예민한 귀가 필요해요. 마음에 드는 소리를 냈을 때 그 맛은 뭐라고 표현할 수가 없어요. 지휘봉을 내려놓을 수 없는 이유입니다.” 8월1일∼16일 예술의전당.
윤성정 기자 ys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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