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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국에 요순 임금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세종대왕이 있다. 세종의 리더십은 백성의 상처와 어려움을 어루만져주는 치유형 리더십이다. 세종실록을 읽으며 민족적 자부심을 느낀다는 박현모 교수는 “정조실록이 숨막히는 공간이라면 세종실록에는 여유와 유머가 있어 같이 춤을 추게 된다”고 강조한다. 이제원 기자 |
직언이 군주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은 역사가 설명하고 있다. 군주론을 저술한 마키아벨리는 아첨을 역병(疫病)으로 규정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는 현명한 각료를 선택해 그들로 하여금 진실을 말하는 면책특권을 주라고 제안했다. 당나라 태종은 충언하는 신하로 유명했던 위증(魏甑)을 한때 죽이려고 했다. 이때 태종 곁에 있던 장손황후가 “임금이 현명하면 신하가 강직하다”고 조언했다. 황후의 조언이 없었다면 직언하던 위증은 보다 일찍 생을 마감했을지도 모른다. 국왕의 노여움인 역린(逆鱗)을 건드리기는 목숨을 담보로 하는 일만큼 어려운 일이다.
직언이 어려웠던 것은 조선시대도 마찬가지였다. 조선 건국 후 태종 재임 때까지가 단적인 경우이다. 형제간의 쟁투 등 숱한 정치적 격변기를 거치면서 관료들은 말을 잃었다. 보신(保身)을 먼저 생각했다. 어전회의에서 정승을 비롯한 신하들은 마음속 말은 꺼내는 것을 주저했다. 강직한 관료들이라도 두려움은 피할 수 없었다. 세자 양녕을 폐하고, 새로운 세자를 세울 때도 신하들은 말을 못했다. 어진 대군을 골라 세자로 정하겠다는 태종의 ‘택현(擇賢)’ 발표가 있었지만, 신하들은 ‘임금이 정할 일’이라며 몸을 뒤로 뺐다. 그러나 역사는 직언문화가 뿌리를 내릴 때 진보해 왔다.
조선 조정의 어전회의에서 직언하는 문화로 분위기가 반전된 때는 세종이 집권하면서부터다. 세종은 아래로 좋은 의견을 구하면서, 신하들이 능력을 맘껏 발휘할 분위기를 만들어주었다. 세종이 재위 5년에 했던 말은 그의 철학을 보여준다.
“‘내 들으니, 임금이 덕이 없고 정치를 잘못하면 하늘이 재앙을 보내 하늘이 경계시킨다’고 하는데, 지금 가뭄이 극심하다. 대소 신료들은 제각기 위로 나의 잘못과 정령(政令)의 그릇된 것과, 아래로 백성들의 좋고 나쁨을 거리낌없이 마음껏 직언하여,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걱정하는 나의 지극한 생각에 부응되게 하라.”
세종은 올바른 어전회의 문화 정착을 위해서 여러 규칙을 실천해 보였다. 신하들에게 어전에서 땅에 엎드리지 말라고 지시하며 곧은 자세로 회의에 임하라고 명했다. 국왕의 잘잘못을 모두 직언하라고 요청했으며, 긴급 현안이 발생하면 한자리에 모여 의논하도록 했다. 소수의 의견도 경청하면서 “한 사람의 말만 가지고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런가 하면 세종은 좋은 의견이 나오면 “황 정승의 말이 옳다, 황희 말대로 하라” 등의 표현으로 힘을 실어주면서 좋은 의견은 정책으로 실행되도록 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고 했던가. 이런 분위기에서는 성리학을 공부한 유학자들도 절로 흥을 냈을 것이다. 우리가 요즘 기억하고 암기하는 위대한 인물들이 세종 시절에 유독 많은 것은 임금의 능력 덕으로 이유를 돌려도 좋다. 토론하는 문화 속에서 자발적으로 현장에 참여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최대치로 발휘하는 이들이 늘었던 것이다. 이는 조선왕조실록 중 세종실록에서 발견되는 특이점과도 궤를 같이한다. 세종실록에는 토론 과정에서 자신의 애초 생각을 바꾸는 신료들이 자주 등장한다.
박현모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러한 세종의 리더십만 제대로 연구하더라도 국가의 품격이 달라질 것이라고 강조한다. 2005년 이후 시민강좌 ‘실록학교(www.sillok.net)’를 운영하며 세종의 제왕학을 일반에 전파해온 학자답다. 1기에 4개월 이상 걸리는 실록학교는 벌써 13기 수강생을 받는다.
그는 정조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으나 세종 알리기에 더 열성적이다. 서울 광화문의 세종문화회관 별실에서 만난 박 실장은 “정조가 개혁군주라면, 세종은 실용군주였다”며 “해박한 군주인 정조가 역할모델로 삼은 국왕은 세종이었는데, 제가 살펴보니 의외로 세종에 관한 국내의 연구가 미진한 상황이었다”고 설명한다.
조선의 대표적인 군주들을 연구한 학자로서 그는 세종과 정조를 비교하는 설명을 이어간다. 정조와 세종은 국왕 등극 일성부터 차이를 보였다. 박 실장은 “세종은 태종의 업적을 계승하겠다고 했지만, 정조는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고 선언했다”며 “정권을 담당한 직후 보인 태도가 두 국왕의 차이를 보여준 것이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공개된 어찰에서 드러났듯이, 정조는 앞에서 끄는 군주였어요. 이에 비해 세종은 뒤에서 밀거나 함께 가는 리더십의 모범을 보여주었지요. 방향만 제시하며 신하와 백성이 스스로 움직이게 하였어요. 세종 집권기에 유난히 역사적 인물이 많았던 것은 그들이 능력을 발휘하도록 힘을 실어준 세종 덕택입니다. 인재를 등용하면서도 차별을 하지 않았어요.”
세종의 인재경영 성공 사례의 맨 앞에는 명재상으로 이름을 남긴 정승 황희가 자리한다. 황희는 훗날 세종이 된 충녕이 아닌 양녕을 태종을 이을 계승자로 미는 등 오랜 기간 세종의 정적이었다. 황희는 세종 재임 초기 뇌물수수와 축재 등으로 몇 차례 탄핵 위기에 직면한다.
더구나 ‘2차 왕자의 난’ 때 방간에게 선제공격을 제안했던 박포의 아내와는 자신의 토굴에서 간통하며 유학자의 체면을 버렸다. 박포의 아내는 집안의 종과 간통하는 장면이 드러나자, 이를 지켜본 우두머리 종을 죽이고 남편을 피해 도망 다닌다. 그러다가 황희의 집 마당 북쪽 토굴에 숨어 살면서 여러 해 동안 황희와 간통했다. 황희의 이런 행각이 세종 집권 이후 드러났지만, 세종은 황희의 균형적인 시각과 통찰력 등을 높이 사 18년 동안 정승을 맡겼다. 세종 재위 12년 후부터 황희는 추문을 더 이상 만들어내지 않았다. 세종실록에 따르면, 황희는 세종을 만나면서 ‘간악한 소인’에서 ‘청렴한 재상’으로 탈바꿈한다.
박 실장의 실록학교에는 장관에서 대기업 CEO와 대학교수, 주부, 중학생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람이 참여해 왔다. 4년 전 세종을 한국형 리더의 전형으로 소개하자 ‘세종은 이미 다 알려진 국왕’이라는 반응이 나오는 등 어려움도 많았다. 하지만, 박사 학위 논문을 쓸 때 정조실록을 꼬박 다 읽는 데 1년을 투자한 것처럼, 지극정성으로 세종을 파고들었다. 실록에 언급된 내용을 하나하나 설명하며 세종의 모습을 전했다. 그랬더니, 지난해 출간한 저서 ‘세종처럼, 소통과 헌신의 리더십’(미다스북스)에 소개된 것처럼 세종의 정치에 반해 눈물을 흘리는 청강생과 독자가 늘었다. “우리도 이렇게 알뜰살뜻 애민정신으로 가득 찬 국왕이 있었다”는 사실을 재확인하고 흘리는 감동의 눈물이었다. 누구보다도 오늘 한국 사회의 지도자로 자처하는 이들이 세종의 철학을 받아들여 실천해야 할 것이다.
이제 박 실장에게는 꿈이 있다. 세종의 이야기를 한류를 대표하는 상품으로 수출하는 것이다.
“한글 창제, 세자빈 동성애 사건 등 세종실록에는 드라마 등 멀티콘텐츠로 활용할 내용물이 가득합니다. 이를 제대로 활용하면 국내 콘텐츠 산업에도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실록학교 차원에서는 세종의 리더십을 외국에 수출하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습니다. 회의 방식이나 독서경영, 인재등용 등 세종이 집권 당시 선보인 경영법은 잭 웰치나 빌 게이츠 등 서구형 CEO 모델이 갖는 장점 이상의 특장점이 들어 있어요. 우리의 자랑인 세종은 파고들수록 진가와 향기를 드러내는 매력 있는 대상입니다.”
bali@segye.com
■박현모 교수는…
1965년 전남 함평 출생.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2005년부터 세종을 비롯해 영조와 정조 등 우리 역사를 빛낸 이들의 기록을 탐구하는 ‘실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최고의 관심은 단연 세종실록에 두고 있다. 잭 웰치의 경영철학이나 6시그마를 능가하는 한국형 리더십의 답이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에게 세종은 아름다운 군주였다. 세종은 백성, 다시 말해 이 땅의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함께 울어준 군주여서다.
●저서
‘세종처럼―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세종의 수성 리더십’ ‘정치가 정조’ 등
1965년 전남 함평 출생. 한국학중앙연구원 세종국가경영연구소 연구실장. 원광대 정치외교학과 졸업 후 서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 취득. 2005년부터 세종을 비롯해 영조와 정조 등 우리 역사를 빛낸 이들의 기록을 탐구하는 ‘실록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최고의 관심은 단연 세종실록에 두고 있다. 잭 웰치의 경영철학이나 6시그마를 능가하는 한국형 리더십의 답이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에게 세종은 아름다운 군주였다. 세종은 백성, 다시 말해 이 땅의 사회적 약자의 고통에 함께 울어준 군주여서다.
●저서
‘세종처럼―소통과 헌신의 리더십’ ‘세종, 실록 밖으로 행차하다’ ‘세종의 수성 리더십’ ‘정치가 정조’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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