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업체들 정부 정책변화 가능성에 촉각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에릭슨’이 한국에 15억달러(약 2조원)를 투자하기로 함에 따라 4G(세대) 통신기술 국제표준의 양대 후보인 ‘와이브로’(WiBro)와 ‘LTE’(Long Term Evolution)가 국내에서 경쟁을 벌이게 됐다.
12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에릭슨은 4G 통신기술 분야에서 한국을 테스트베드(Test-Bed)로 삼아 공동 연구를 위한 ‘R&D(연구개발) 센터’를 신설하고, 한국 지사의 인력을 현재 80명에서 1000명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방통위 최시중 위원장은 “에릭슨의 앞선 그린 네트워크 기술과 한국이 가진 세계적 수준의 ICT(정보통신기술) 테스트베드 환경이 결합하면 태동기에 있는 그린 ICT 시장을 선점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과 스웨덴의 이번 만남은 일반적인 외자 유치와는 성격이 다소 다르다. 에릭슨은 삼성전자와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독자 개발한 토종기술 와이브로와 대결 구도에 있는 LTE 진영을 선도하고 있다. 스웨덴은 LTE 원천기술 업체인 에릭슨 중심으로 이르면 올해 말부터 LTE 서비스를 본격화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에릭슨은 적진의 한복판과 다름없는 한국에 LTE R&D센터를 가동하게 된 셈이다.
결국 한국이 이번 에릭슨의 투자를 받아들인 것은 글로벌 통신시장의 트렌드를 감안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풀이된다. 와이브로가 국내에서 별다른 내수 기반을 다지지 못하고 해외에서 활로를 찾는 등 위기감이 커지고 있는 반면, LTE는 향후 세계시장의 70∼80%를 차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는 등 글로벌 메이저 통신사를 중심으로 기반을 넓혀가고 있다.
이에 따라 LTE가 세계시장의 대세가 되리라는 점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장비나 단말기 등 수출 분야에서 실속을 차리기 위해 서둘러 LTE 기술 기반을 마련하는 쪽으로 선회했다는 것이다. 방통위는 이미 4G 기술로 와이브로와 LTE의 병행 개발을 추진하면서 지난 3년 간 ETRI를 중심으로 와이브로 개발에 625억원, LTE 개발에 572억원을 투자해왔다고 강조했다. 방통위 관계자는 “LTE는 우리가 원천기술 없이 상용화 기술만 확보하고 있어 에릭슨과 4G 분야에 투자하게 된다면 원천기술 확보를 통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국내 와이브로 장비개발업체는 정부가 에릭슨의 LTE 카드를 수용한 배경과 정책변화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삼성전자 등이 와이브로 기술로 아랍에미리트, 우즈베키스탄 등 신흥 시장을 개척해가는 상황에서 정부가 LTE로 기우는 듯한 잘못된 신호를 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 기업들의 우려를 알고 있다”며 “와이브로 투자는 당초 계획대로 계속 이행해나갈 것이고, 세계 통신회사들이 LTE 체제를 운용하고 있는 만큼 국내 기업이 세계시장에 진출하는 개념으로 이해하면 된다”고 말했다.
조현일 기자
와이브로와 LTE=두 기술은 2011년 확정될 4G(세대) 국제 표준의 양대 후보다. 4G란 ‘정지 상태에서 1Gbps(1000Mbps), 시속 60㎞ 이상 속도로 이동 시 100Mbps 이상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는 차세대 휴대인터넷 기술이다. 와이브로는 한국이 순수 국내기술로 개발, 원천기술을 보유하고 있으며, 2006년 6월부터 국내에서 상용서비스가 시작됐다. 유럽에서 개발된 LTE는 GSM(2세대), WCDMA(3세대)에서 진화한 기술로 기존 3G망을 연동해서 사용할 수 있다는 등의 장점 때문에 세계 유수의 통신사들이 이 기술을 채택하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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