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란 육신의 허기를 제물로 삼아 영혼의 허기를 채우려는 안간힘일지 모른다. 현대사회에서 질병처럼 만연한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대한 강박은 기실 그 바탕을 들춰 보면 존중받고 싶고, 나아가 사랑받고 싶은 욕구에서 출발한다. 날씬한 몸매가 뚱뚱한 몸뚱어리보다 더 매력적이어서 사랑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믿음, 이 신념은 육신의 허기를 제압할 명분이 되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그 철석같은 신념이 공허한 것이라면, 외곬의 어리석은 믿음 때문에 육신의 허기는 물론이고 영혼의 허기까지 더 깊어진다면 어찌할까.
백영옥(35·사진)의 새 장편소설 ‘다이어트의 여왕’(문학동네)은 다이어트를 둘러싼 다양한 생각 거리들을 흥미로운 스토리 라인에 담아내는 작품이다. 지난해 세계문학상 수상작 ‘스타일’에서 보여준 것처럼 백영옥은 한국사회 젊은 여성들의 욕망과 고민을 날렵하게 채집하여 보여주는 데 능하다.
이번 소설의 주인공은 스물여덟 살짜리 요리사 정연두. 그네는 173㎝에 85㎏의 몸무게를 지녔지만 3년 동안 사귀던 남자와 헤어진 뒤 100㎏까지 몸무게가 늘어났다. 그네는 요리사가 다이어트를 하는 건 직업윤리에 어긋난다고 생각하는 쪽이었지만 결국 방송작가 친구가 다이어트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하라는 끈질긴 청탁을 수용하고 만다.
허기진 요리사가 맛을 제대로 그려내기는 어렵다. 그러니 다이어트에 매달리는 요리사란 직업윤리를 정면으로 거스르는 셈이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진정한 낭만적 이별의 시대는 끝난 것”이고, 실연의 악몽에 벗어나기 위해선 자극과 변화가 필요한 것을. 연두는 치열한 경쟁을 뚫고 본선에 진출한 다양한 캐릭터 13명과 함께 합숙을 하며 다이어트 과정을 담은 리얼리티 프로그램을 찍는다. 하이힐을 결코 벗지 않는 슈즈 디자이너 송준희, 항상 두건이나 베레모를 눌러쓴 최단비, 내년이면 학교에 입학하는 딸을 둔 미혼모 박순옥…. 몸무게가 최소 74.3㎏에서 최고 142㎏인 여자 14명이 참가한 다이어트 전쟁은 참가자가 탈락자를 지목하는 과정까지 포함하여 마지막 승자를 가리는 진흙탕 싸움이다.
이 싸움의 승자가 누구인지는 직접 읽어보면 알 일이지만, 이 과정에서 연두가 얻은 깨달음이야말로 승자의 영광보다 더 값지다.
“이제 나는 요리사로서 내 소명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허기란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의 결핍과 관련된 삶의 은유이며, 때문에 우리가 사랑에 배고프고 관심에 목마른 것은, 모든 거식증 환자들의 허기와 다르지 않다는 걸. 설령 뚱뚱하던 시절로 돌아간다 해도, 나는 이제 내가 이해한 ‘배고픔’으로 영혼을 살찌우는 진짜 음식을 만들 것이다. 그것이 세 번의 이별과 세 번의 똑같은 아픔이 내게 준 선물이라는 것을 이제야 나는 알 것 같았다.”(388쪽)
인간들이 살아가기 위한 절대적인 조건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육신의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한 음식이요, 또 하나는 삶의 이유를 공급해 주는 ‘사랑’이라는 에너지다. 음식을 섭취하지 못하면 곧바로 죽음에 이르지만, 사랑을 받지 못하면 살아 있어도 큰 의미가 없다. 그러니 두 가지 허기를 동시에 지닌 거식증은 치명적인 질병이다.
지난해 12월부터 인터넷서점 예스24 블로그에 6개월 넘게 연재했던 이 소설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작가는 책으로 묶으면서 마지막 장을 새로 덧붙였다.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다이어트를 넘어서는 인간들의 ‘불편한 진실’이 ‘비릿한 흙냄새’ 속에 드러난다.
인터넷에 연재하는 동안 독자들과 긴밀하게 댓글로 대화를 나누었던 백영옥씨는 “소비사회에서 현란하게 전시되는 상품화된 타인의 몸에 익숙해져 정작 자신의 몸을 비현실적으로 느끼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도 “막상 우리 사회에서 비만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한 발 물러섰다. 그는 “다만 질문을 던질 뿐”이라고 덧붙였다.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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