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혁명 넘어 그린혁명 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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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병옥 한국외대 교수·중동연구소 소장 |
이렇듯 그린혁명의 열기가 고조되는 상황에서 예상외로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의 재선은 국민에게 큰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게다가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여러 의혹이 제기되자 국민들은 그동안 참았던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대규모 시위를 벌이게 된 것이다. 이번 시위에서는 시위대와 바시즈 민병대의 격렬한 대치상황으로 인해 수십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수치는 이란 정부의 언론통제로 정확하지 않다. 일각에서는 1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지난 금요예배에서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불법적인 시위를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그럼에도 시위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20대 대학생으로 밝혀진 ‘네다’라는 한 여성이 민병대의 총에 맞아 사망하는 영상이 유포되게 되면서 오히려 더욱 격렬해졌다. 부정선거를 바로잡아 재투표를 하자는 요구로 시위가 시작됐지만 이제는 그 의미가 더욱 확장돼 신정체제의 붕괴까지 거론되는 상황이다.
위기감을 느낀 하메네이는 일부 재검표를 지시했고 헌법수호위원회는 재검표 결과 이번 선거에서 어떠한 부정도 없었다고 발표했다. 이것은 예상한 대로 성난 민중을 일시적으로 달래기 위한 요식행위에 불과한 면피용이다. 강도가 더욱 높아지는 정부의 진압으로 인해 시위는 수그러들 것처럼 보이지만, 시민들은 정부의 강경진압을 피해 과거 1979년 이슬람혁명 당시를 회상케 하는 ‘옥상시위’를 벌이며 항쟁을 계속하고 있다.
부정선거로 촉발된 이번 시위는 이란 내 ‘보수와 개혁’ 세력의 갈등 차원에서도 이해될 수 있다. 즉, 외관상으로 이번 사태가 대선에서 아흐마디네자드와 무사비의 싸움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내면적으로는 하메네이와 현 전문가회의 의장이자 차기 최고지도자로 유력한 인물인 아크바르 하셰미 라프산자니의 대립구조가 형성됐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갈등 상황에서 미국을 위시한 국제사회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직접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있지만, 이란 정부는 이미 이번 사태를 미국을 위시한 외세의 음모에 의해 촉발된 반국가 친미 반동세력으로 낙인찍고 강경진압의 구실로 삼고 있다.
이번 이란의 시위를 통해서 우리는 이란 국민의 민주화에 대한 열망을 보았다. 사실 모든 권력은 신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이란의 신정체제는 모든 권력이 국민에서 나온다고 보는 서구적 민주주의와 충돌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국민이 없으면 국가도 없듯이 이란의 이슬람정권은 민심을 바로 읽어 ‘민심은 곧 천심’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정권을 잡은 강경보수 이슬람세력이 플라톤의 이상주의적인 국가와 같은 청사진을 제시하자 대다수 이란 국민은 ‘이슬람 신정국가’의 수립을 전폭 지지했던 것이다. 그러나 30년간 숨이 막힐 정도로 억압적인 신정통치체제에 신물이 난 지금 이란 국민은 무엇을 원하는가. 그것은 자유와 민주주의로 가득찬 평화로운 시민사회이다. 이것이 바로 이슬람혁명을 넘어 평화를 상징하는 그린혁명인 것이다.
장병옥 한국외대 교수·중동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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