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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국회의원 |
4·29 재보선 패배로 한나라당 내 쇄신 요구가 거센 요즘 마음속에 떠오르는 채근담의 한 구절이다. ‘우리가 오만하지 않았나, 과거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문해 보면서 다시 채근담을 꺼내 보았다.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정신없이 시간을 보낼 때나, 당장에 급박한 현안 속에 파묻혀 잠시 눈을 들 여유조차 없을 때 채근담은 나에게 지혜와 가르침을 준다. 인터넷을 열어보면, 날마다 새로 나오는 책의 홍수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일쑤이다. ‘저 책도 읽어봐야 하는데’, ‘저 책도 평이 좋다는데’ 하지만, 그럴 때마다 손때 묻은 채근담을 꺼내서 한 구절씩 읽곤 한다. 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변치 않는 지혜를 주고, 나무 뿌리를 먹듯이 담담하게 세상사를 헤쳐 나오라는 가르침을 주기 때문이다.
채근담에는 늘 서양의 탈무드와 비교하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서양의 탈무드와 비견되는 동양 최고의 지혜서’라는 설명은 채근담에게 너무 화려한 수식어이다. 채근담은 화려한 수사보다 담백한 가르침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고시 공부가 힘들었던 시절, 내 삶의 목표를 찾아 헤맸던 시절에 이 책을 읽었다. 단지 고전이라는 그럴듯한 명성에 이끌린 얄팍함이었는지, 현재의 탈출구를 찾기 위한 나름의 발버둥이었는지 잘 몰라도, 난 몇 번이고 책을 꺼내들면서 삶의 지혜를 찾았다. 옛사람의 투박한 이야기가 유난히도 든든함을 주었다.
채근담의 가르침은 정신없이 변화하는 현대와는 반대로 흐른다. 온갖 종류의 처세술이 새롭게 쏟아지는 오늘, 시류에 영합하지 말라고 가르치고, 시대에 어긋나더라도 옳고 그름을 택할 수 있는 길을 가리켜 준다.
채근담의 저자 선비 홍응명은 평생 뜻을 제대로 펼치지도 못한 불우한 인물이었지만 채근담이라는 불후의 명저를 남겼다. 시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초야에 묻혀서 쓴 책인데도 시대에 대한 불만이 없는 깊은 깨달음을 주었다. 그는 시대에 영향을 미치는 역할은 반드시 권력과 함께 하는 것만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해주고, 정치인에게도 눈앞의 권력을 따르고 줄서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길게 보는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눈앞의 이익에 급급한 우리의 정치, 서로에 대한 불신과 원망으로 가득 찬 우리의 정치, 채근담은 전한다. ‘천지는 하나의 커다란 부모이니, 사람들로 하여금 원망함이 없게 하고, 일체의 사물에 근심이 없게 하면, 이것이 바로 화합의 기상이다’라고.
언젠가 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장래 희망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이 1위를 했다는 기사를 읽고 안타까웠던 적이 있다. 어떤 세류(世流)가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이런 꿈을 꾸도록 만들었을까.
돈을 많이 버는 것이 꿈이라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야망이 없는 것이라는 오바마의 말을 굳이 떠올리지 않더라도 대단히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눈앞의 것, 남에게 보여지는 것, 일신의 안녕이 아닌 더 큰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우리 아이들이 깨닫게 할 수는 없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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