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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 암행감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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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9-04-23 21:43:26 수정 : 2009-04-23 21:4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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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관을 감찰하기 위한 제도는 신라시대부터 있었다. 잠입하거나 암행이 아닌 공개된 관리였다. 말 그대로 ‘비밀리에’ 임금의 명을 수행하는 암행어사는 조선시대에만 있었다. 실록에는 성종 때 처음 채택해 고종 때까지 약 400년 동안 1000여명이 활약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럼에도 영조 때의 박문수 등 성공한 사례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관리가 민초를 괴롭히고 장사꾼이 저울을 속이는 것을 감시하는 일은 유사 이래 모든 정권이 해결해야만 했던 숙제다. 박문수가 남몰래 허리춤에 마패와 함께 자를 갖고 다녔고, 아르키메데스가 금관의 순도를 측정한 이유다.

역사상 언제 어디에서나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부패한 공직자는 있게 마련이다. 그러다 보니 부패 방지나 공직기강을 잡기 위한 암행감찰은 공직사회의 단골 메뉴가 된 지 오래다. 명절뿐 아니라 휴가철이나 연말연시에 늘 등장한다. 엄연한 뇌물임에도 촌지나 떡값의 수수행위는 정표 정도로 여겨졌을 만큼 뿌리가 넓고 깊게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다.

집권 2년차를 맞은 현 정권에서는 요즘 암행감찰이 대유행이다. 청와대가 요주의 인물에 대해 24시간 미행감시를 벌이고 있으며, 감사원과 행정안전부, 경찰, 국세청 등도 뒤질세라 가세했다. 관가의 저승사자나 다름없는 암행감찰반의 시범케이스에 걸리면 ‘반죽음’이다.

강남 분당 등 이른바 물 좋은 지역의 각급 학교에 대한 촌지 단속으로 교단이 술렁대고 있다. 국무총리실 국민권익위원회가 스승의 날을 앞두고 일부 공립학교 교사의 쇼핑백이나 승용차 트렁크를 뒤지는 등 비인격적 처사인 점도 없지 않다.

촌지 근절을 위한 암행감찰은 오래전부터 매년 이맘때만 되면 시행해 왔지만 근절되지 않고 있다. 촌지는 내 자식을 잘 봐달라고 건네는 학부모의 이기심과 교사의 비윤리성이 합작된 폐습이다.

여전히 횡행하고 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우리의 자화상이다. 단속보다는 주지도 받지도 말자는 범사회적인 정화운동이 우선되어야 한다. 일시적인 암행감찰로 공직사회를 맑게 한다는 것은 백년하청이지 싶다. 아랫사람에게 ‘행하’를 줘야 할 대통령 주변부터 뇌물을 밝히는 세상에 무슨 말을 할까.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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