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편이 바람을 피운다. 일시적인 게 아니라, 지속적이고 강렬하다. 남편은 아내가 누려보지 못한 격정적인 사랑을 정부와 나눈다. 이런 정도 이야기야 그리 낯설지 않다. 아내의 정부를 만나 음모극을 꾸미는 ‘아내의 애인을 만나다’나 아내와 정부가 공모하는 복수극 ‘디아볼릭’도 유사한 범주에 속한다. 핀란드영화 ‘블랙 아이스’는 이런 영화들보다 한 발자국 더 내디뎌 (제목의 뜻처럼) ‘살얼음판’ 위에 애증의 시나리오를 살벌하게 띄운다.
40세 산부인과 의사 사라(우티 마엔파)는 건축가 교수 남편 레오와 행복하다고 믿으며 살고 있다. 그런데 우연히 레오의 제자 툴리(리아 카타야)가 정부란 사실을 발견한다. 이제 사라는 이혼녀의 가면을 쓰고 툴리에게 접근한다. 당연히 복수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한 것이다. 야간에 태권도 사범을 하는 툴리에게 접근하기 위해 사라는 밤마다 도장에 나가 그녀의 연상 제자가 된다. 이혼을 각오한 별거 상태의 중년의 사라와 유부남 애인의 우유부단함에 지쳐가는 젊은 여자 툴리는 남자에 대한 각자의 고뇌를 나누며 친구가 된다.

인간의 변화무쌍한 분열적 심리를 세밀하고 심오하게 관찰하는 페트리 코트비카 감독의 시선은 북구의 차가운 풍경에서 화산처럼 타오른다. 한 남자를 두고 심리전을 벌이다 강렬한 관계를 구축하는 여성 버디 드라마를 주도하는 우티 마엔파와 리아 카타야는 강인한 북구 여성의 뜨겁고도 차가운 에너지로 스크린을 장악한다. 게다가 한국에서 거의 보기 불가능한 핀란드영화에 태극기 걸린 태권도장이 나오고, 핀란드인들이 ‘쉬어’, ‘품새’ 같은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구경하는 것은 색다른 흥미를 주기도 한다.
그간 보아온 어떤 영화들보다 강력한 감정묘사와 섹슈얼리티의 재현, 특히 어린 정부가 그린 중년 남성의 적나라한 누드 스케치의 심리예술적 활용은 혀를 차게 만든다. 좀처럼 보기 힘든 보석 같은 작품이다. ‘원초적 본능’을 전복시키며 에로틱 스릴러의 역사를 다시 쓰는 이 영화가 유수한 영화제들에서 왜 여배우상을 휩쓰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란다.
동국대 교수?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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