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계약' 등 불법관행 차단해야 신인 연예인에 대한 연예기획사의 인권 침해 행위나 일명 ‘노예 계약서’로 불리는 불공정한 전속계약 관행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하지만 탤런트 장자연의 자살사건을 계기로 이번 기회에 연예계의 불법 관행을 뿌리 뽑지 못한다면 제2, 제3의 피해자가 또다시 양산될 것이다. 이 때문에 우리 사회의 한 직업군으로 자리 잡은 연예인을 보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고 있다.
◆‘고위험·저수익’ 구조의 악순환=연예계 종사자들과 법률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연예산업의 폐쇄적인 구조상 불합리한 계약 관행이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특히 기획사와 연예인의 과도한 밀착 관계는 인권 침해 등의 부작용을 낳고 있음에도 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어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대부분의 기획사와 연예인의 계약 방식은 ‘고위험·저수익’ 구조다. 기획사가 신인 연예인을 훈련시키는 비용이나 활동에 들어가는 제반 경비를 부담하는 대신 수익이 생기면 40∼50%, 심한 경우 90%를 가져간다.
문제는 수천만원을 들여 신인 연예인을 키워도 투입 비용에 상응하는 수입을 올리는 연예인은 극소수고, 그나마 갑자기 인기를 얻으면 더 좋은 조건을 제시하는 기획사로 옮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는 것. 이런 위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기획사는 계약기간을 5∼10년까지 장기화하고, 계약 해지 위약금도 계약금의 10배 이상 매겨 놓고 있다.
연예인 소송을 많이 다뤄온 최정환 변호사(법무법인 두우)는 “연예인이 갑자기 ‘뜨면서’ 힘의 균형이 역전된 연예인과 소속사 간 계약 해지 관련 소송이 가장 많다”며 “소속사에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작성된 계약서도 문제지만, 소속사에서 키워준다고 하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하겠다며 불공정한 계약을 받아들이는 연예인 지망생들의 태도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제도 개선 시급=연예인에게 족쇄를 채우는 불합리한 관행을 없애기 위해서는 기획사 설립 요건과 의무를 강화하는 한편 배우에 대한 보호장치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매니저 K씨는 “한국에서는 소속 연예인 한 명 없어도 사무실만 있으면 기획사를 차릴 수 있다”며 “이런 허점을 이용해 문제를 일으킨 기획사들이 대표와 기획사 이름만 바꿔 또 다른 기획사를 세우는 일을 반복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획사와 유사한 업종인 모델 에이전시의 경우는 직업안정법에 근거를 두고 직업 소개업으로 사업을 하지만, 기획사의 경우 명확한 관련 법규나 규제 체계가 미미한 상태다. 이에 따라 한 국회의원도 연예매니지먼트 사업의 계약 방식과 부당 거래 금지 원칙 등을 규정한 ‘연예매니지먼트사업 법안’을 제출키로 했으며, 공정거래위원회도 뒤늦게 ‘표준계약서’를 만든다고 호들갑이다.
하지만 술 접대, 성 상납 등은 계약서와 관계없이 음성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법적으로 규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따라서 연예인을 발굴하고 관리하는 매니지먼트 업무와 캐스팅 등 계약·협상을 대행하는 에이전시 업무를 명확히 분리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현재 국내 연예기획사들은 매니지먼트와 에이전시 업무를 통합해 수행할 뿐 아니라 제작사까지 겸하고 있다. 연예기획사의 권력이 막강해져 캐스팅 권한까지 휘두르는 이유다. 미국의 경우 에이전시는 연예인에게 전속금 없이 수익의 10%선에서 수수료를 받으며, 연예인은 스스로 연기수업 등을 받은 뒤 에이전시와 계약을 체결한다.
잇단 연예인들의 우울증 등으로 인한 자살을 막기 위한 대책도 나오고 있다.
최근 연예인 전문 상담 프로그램인 ‘스타 시스템’을 마련한 하이패밀리의 양재돈 기획실장은 “평소 연예인들이 남모를 아픔과 고통이 있지만 주위에 쉽게 말하지 못하기 때문에 익명 상담 프로그램을 진행키로 했다”고 말했다. 한국방송문화공연예술인노동조합도 회원들을 대상으로 장자연과 유사한 피해 사례에 대해 실태 조사를 벌이는 한편, ‘선후배 멘토 상담 프로그램’을 운영할 방침이다.
김수미·백소용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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