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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반이정씨는 설치미술가 매튜 바니의 작업을 차용해 비평가로서 자전거 위에서 책을 읽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
비평가로서 타인의 작품을 비평하고 때론 공격하다가 잠시 작가로 변신한 미술평론가 반이정씨는 창작의 고통을 이같이 털어놨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이 5월17일까지 선보이는 ‘비평의 지평’전은 비평가들이 작가로 변신한 전시다. 비평가들이 직접 전시공간을 꾸미는 전시로 국내에선 처음 시도됐다.
예술에 있어 작품을 만들어내는 ‘작가’와 이를 해석하고 비평하는 ‘비평가’는 서로 공생관계이면서도 대척점에 서 있다. 비평가는 작가가 창조해낸 작품을 해석하고 언어로 옮김으로써 작가와 예술감상자 사이의 연결자가 되어준다. 비평가는 ‘꿈보다 좋은 해몽’으로 작품을 더 위대한 것으로 보이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작가가 애써 만든 작품을 비판해 창작자의 가슴에 비수를 꽂기도 한다.
이번 전시는 타인의 작품을 통해 간접적으로 자신의 가치관과 세계관을 드러냈던 비평가들이 자신을 직접 드러내는 전시이며, 비평가들이 작가의 입장을 역지사지로 이해할 수 있는 무대이기도 하다. 현재 미술계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강수미 류병학 반이정 장동광 심상용 등 10명의 비평가가 참여했다. 대중에게 불친절한 또 하나의 개념적인 ‘현대미술’을 보여준 작가(비평가)도 있지만, 일반 대중이 모르는 비평가의 일상과 흔적, 삶 등을 보여주는 전시도 선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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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심상용씨가 빈센트 반 고흐를 기리며 그린 작품 ‘경의를 표함’. |
“이번에 창작의 고통과 어려움을 알게 됐어요. 이렇게 고생하면서 작업했는데 관람객이 대충 보면 정말 속상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앞으로 제 비평활동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습니다. 실수하거나 함부로 말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장 중요한 건 자기 비평에 일관성을 지키는 것이겠죠.”
반씨는 미국 설치미술가 매튜 바니의 ‘구속의 드로잉’을 차용한 ‘구속의 읽기/쓰기’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2005년 바니의 국내 첫 개인전에 대해 비판적인 비평을 쓴 적이 있던 반씨는 이때 마음이 편치 않아 그의 작업을 차용하기로 했다. 몸을 고생시키면서 드로잉을 펼치는 바니처럼 반씨는 비평가로서 자전거를 타며 책 읽는 행위를 펼쳐보였다. 왼손으로 핸들을 잡고 오른손으로 책장을 넘기고 밑줄을 긋고 메모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또 매튜 바니가 국제 화단에서 ‘MB’라는 이니셜로 통한다는 점에 착안해 한국 사회에서 MB로 통하는 이명박 대통령을 끌어들였다. 그는 달리는 자전거 위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서울시장 시절 자서전과 매튜 바니의 책 2권의 텍스트를 읽고, 그 과정을 동영상과 사진으로 남겨 전시했다.
이 밖에 장동광씨는 ‘C큐레이터의 자전적 연대기’라는 주제로 자신이 직접 기획한 전시 공간의 도안, 전시 카탈로그와 자료 등을 꼼꼼히 정리해 놓았다. 심상용씨는 ‘경의를 표함’ 연작을 통해 카미유 클로델, 빈센트 반 고흐, 프리다 칼로, 캐테 콜비츠, 알베르토 자코메티 등을 기리는 경의를 작품에 담았다. 각 작가의 이미지를 그린 뒤 그에 관한 감상을 글자 하나하나를 콜라주 형식으로 오려붙였다. 류병학씨는 주어진 공간을 ‘류병학 서재 살인사건’이라는 주제로 꾸몄다.
김지희 기자 kimpossi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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