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 학생 어린이 회장에 나가기 위해 연설문을 준비하고 있는 어느 똑똑한 어린이의 스피치를 지도해줄 기회가 있어 지도하다 보니 역시 연설문에 의존한 암기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기억이 날 때야 모르지만 생각이 나지 않을 땐 "어어" 눈동자가 위로 올라가며 기억을 끄집어 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보인다. 어느새 문장은 비문이 되고 단어 하나를 잘못 쓴다.
보니 그 다음 단어도 떠오르지 않고 계속 버벅댄다. 연설문을 '완벽히 준비'해온 친구인데, 그렇다면 과연 이 연설문을 그대로 외우라는 이야기일까?
이 질문에 대해 필자는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겠다. 그 학생에게 단지 전체 키워드, 맥락을 기억하라고 했다. 연사들이 대부분 청중 앞에서 실수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내용을 암기하는 함정에 빠진다. 일단 그런 정신적 악습에 빠지게 되면, 시간만 낭비하게 되고 오히려 연단에서의 생동감을 잃게 되기도 하기 때문에 대본 그대로 암기하려고 하는 것은 어찌보면 미련한 짓이다. 암기를 토대로 연설을 하게 되면 얼굴 표정도 살지 않고, 어느 순간 실수라도 하게 되면 머리 속이 텅빈 듯 앞이 캄캄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 역시도 마찬가지지만 방송을 할 때나 강의를 할 때, 프리젠테이션을 할 때 절대 대본을 암기하지 않는다. 암기를 제쳐두고 자기 나름대로 스토리 구성을 해보는 것을 권한다. 자신이 할 이야기를 모두 암기하려고 하는 것은 시간과 정력의 낭비일 뿐 아니라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오로지 집중해야할 것은 아이디어이다. 아이디어가 뚜렷하다면, 말은 우리가 호흡하듯 자연스럽게 나온다.
스피치의 초보자일수록 대중 연설이나 많은 이들 앞에서 얘기를 할 때 암기에 의존해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때는 암기가 최선인 것 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암기로 스피치를 하는 것은 한계에 다다를 수 밖에 없다. 인간의 기억력을 100% 신뢰할 수 없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요?" 하고 물어오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테다.
먼저 스피치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하나의 초점을 향해 가도록 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를 할 때, 흥분하여 목적에 벗어난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렇게 되면 이야기는 동에 갔다 서에 갔다 목적지를 잃고 횡설수설하게 된다. 머리 속이 갑자기 텅 비고, 이야기하고자 했던 내용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종종 아나운서 신입시절 MC를 맡은 선후배들 역시 이런 실수담 한 두가지가 있을 정도이니 일반인은 더 말 할 나위없겠다. 그 예로, 지금은 프리랜서인 신영일 아나운서의 제주도 쑥대밭 리포팅 일화로 방송이 쑥대밭이 된 적이 있는 웃지 못할 실수담을 공개한 바있다. 다른 아나운서들 이런 한두개의 실수담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대중 앞에서 내지 카메라 앞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주제를 파악하고 핵심 키워드를 기억하면 될 것이다.
핵심 키워드를 통한 자신의 스토리 텔링을 들려준다는 마음 가짐으로 목소리의 고저, 강약, 추상적인 것에서 구체적인 것으로의 변화가 있어야 하며, 이야기 내용에 맞는 제스처를 구사하며, 듣는 사람들의 반응을 보고 이에 호응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진정 살아있는 이야기인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똑같은 방식으로, 암기한 내용을 이야기하는 것은 화자의 감성이 없다. 우리 인생의 길흉화복이 있듯이 스피치도 생방송이 멋있다.
이서영(아나운서) 미니홈피 www.cyworld.com/leemisuna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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