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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불교 성지를 가다] <下> 3개월간의 열반여행

입력 : 2009-03-02 18:17:25 수정 : 2009-03-02 18:1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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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예견한 붓다 “번뇌 벗고 정진하라” 설파
◇인도 쿠시나가르 열반사에 있는 붓다의 열반상에 석양빛이 가득한 가운데 순례자들이 참배를 하고 있다.
붓다에게 부여된 생의 불꽃이 거의 소진될 무렵, 등창으로 고통스러워하는 그에게 악마가 찾아와 “하루빨리 열반에 들라”고 재촉했다.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악마여, 여래는 스스로 때를 알고 있으니, 물러가라. 지금으로부터 석 달이 지나 나의 본생지 쿠시나가르의 사라쌍수 사이에서 열반에 들리라.” 붓다는 앞서 제자 아난다에게도 자신의 열반을 알렸다. “아난다야. 내 나이 80에 들어 형상이 썩은 수레와 같으니 이제

더 굳고 강하기를 바랄 수 없다. 아난다야, 너는 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아라.”

마지막 여행의 출발점 라즈기르(왕사성). 교화의 중심지 죽림정사는 지금 벽돌 한 장 찾아볼 수 없고 대나무만 듬성듬성 자라고 있다. 감옥에 갇혀서도 붓다가 있는 영축산을 향해 예배했다는 빔비사라왕의 감옥은 돌담 터가 그날의 슬픈 사연을 전한다.

◇붓다가 죽음을 앞둔 노인들에게도 법을 전파했다는 영축산에 순례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붓다는 우수에 찬 눈으로 라즈기르를 둘러본 뒤, 인도 북단 쿠시나가르로 향했으리라. 가는 중에도 그는 가르침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쉼 없이 법을 전했다. 붓다는 설법 중 ‘항하(恒河)의 모래’로 자주 비유했던 갠지스강을 건너 계속 북상했다. 삶과 죽음이 뒤엉켜 있는 영적 도시 바르나시에서 확인한 갠지스강의 모래는 밀가루처럼 고왔다. 바이샬리 벨루바 마을에 도착한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우안거(雨安居)에 들어간다. 당시는 엄청난 더위와 습도의 계절이었고, 더 이상 견디지 못한 붓다는 병이 났으나 이내 회복한다. 이때 아난다가 묻는다.

“세존께서 병이 위중해 몸이 야위었을 때 저는 앞이 캄캄했습니다. 아직 승가에 대해 아무런 유언도 남기지 않고 돌아가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뒤에야 안심이 들었지요.”

열반 전에 교단을 계승할 사람을 지명해 달라는 뜻이었지만, 붓다는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가르쳤다.

◇붓다가 열반한 곳에 세워진 열반사와 사라쌍수.
“아난다여, 그 기대는 잘못된 것이구나. 나는 내가 이 교단의 지도자라든가, 비구들은 모두 나에게 의지하고 있다든가 하는 생각은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내가 이 교단의 후계자를 지명해야 되겠느냐. 스스로를 의지처로 삼고, 법을 의지처로 삼는 사람이야말로 우리 교단 안에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바이샬리에는 붓다가 ‘화엄경’을 설했던 콜후아 마을에 완벽한 형태의 아쇼카 석주와 ‘스투파(탑)1’이 있고, 붓다 입멸 후 8등분 한 사리를 분배받은 곳에 세워진 ‘스투파2’가 평화스러운 모습으로 순례자들을 맞고 있다.

몸에는 괴색(壞色) 옷을 걸치고 손에는 발우 하나를 든 붓다는 쿠시나가르를 20㎞ 앞둔 파바 마을에서 대장장이 춘다로부터 ‘수크라 맛따바(돼지고기로 추정)’로 불리는 음식을 공양받고 또다시 병이 났다. 붉은 피를 쏟으며 심한 병고에 시달렸다. 설사를 계속하면서 스물 다섯 차례나 휴식을 취한 붓다는 마침내 쿠시나가르의 히란야바티강을 건너 두 그루의 사리나무 사이에서 고요히 누워 열반에 들었다. 이때 대지가 크게 진동했다고 경전은 전한다. 붓다가 열반한 곳은 지금 공원으로 조성돼 있고, 그 안에 흰 석회가 칠해진 열반사와 승원 유적지들이 곳곳에 남아 있다. 열반사 안에는 붓다가 열반 시 고요히 누워 있던 모습 그대로 AD 5세기경에 조성된 6.1m의 열반상이 모셔져 있다. 다른 유적지보다 잘 단장된 너른 경내에는 당시를 재현한 듯 두 그루의 사라나무가 버티고 있다. 대부분 힌두교나 이슬람교 신자인 이곳 주민들은 불교 유적지를 공원처럼 여기고 공휴일이면 도시락을 싸들고 산책을 나온다고 한다. 한 무슬림은 ‘위대한 성인’으로서 붓다를 기억했다.

붓다의 유해는 열반 7일 후 인근 다비장터에서 불태워졌으며, 몸에서 나온 사리는 8개 왕국에 분배됐다. 붓다의 유해를 화장한 다비장터에 라마브하르 스투파가 세워져 있다. 한국에서 간 조계종 순례단은 석가모니불을 염송하며 탑을 세 차례 돌았다.

붓다가 열반을 눈앞에 뒀을 때다. 그는 극도로 피로한 몸이었지만, 제자들에게 의문이 남아 있으면 질문을 하라고 몇 번이고 권한다. 모두 침묵으로 일관할 때 아난다가 “교법이나 승가, 혹은 실천 방법에 대해 조금도 의문이 남아 있는 사람은 없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리라. ‘모든 현상은 변천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라.’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이다.”하늘에는 순한 소의 눈망울 같은 별들이 총총 피어나고 있었다. 조금 후 붓다는 가만히 눈을 감고 영원한 적정(寂靜)에 들어갔다. 흔들리지 않는 마음으로, 고통을 참아내고, 등불이 꺼지는 것처럼 마음의 해탈을 이룬 붓다, 인류는 그를 ‘위대한 스승’이라고 부른다. 광활한 영성의 들녘에 취해 고원한 정신세계를 더듬거렸던 기자의 인도 여행도 막바지에 접어들었다.

쿠시나가르·바이샬리(인도)=정성수 선임기자 hul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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