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살에 정치학박사 꿈을 이룬 이용곤(서울유통 회장) 씨는 배움에 대한 열정을 이렇게 강조했다.
순탄치 않았던 이 씨의 인생 역정만큼 그가 늦깎이 박사가 된 과정도 결코 쉽지 않았다.
그의 험난한 인생역정은 대학졸업을 1년 남짓 앞둔 1955년 구 민주당 조직부 간사로 정치에 입문하면서부터 시작했다.
이 씨는 1956년 5월5일 해공 신익희 선생이 돌아가시자 경무대 앞에서 대학생들이 시위를 벌인 이른바 '경무대 앞 소요사건'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지금의 경남대 모태인 해인대학에서 재적됐다.
경찰에 붙잡혀 7개월간 옥고를 치른 그는 본격적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1960년 4.19혁명 과정에서는 총상을 입어 4.19민주혁명 유공자가 됐고 이후 1982년에는 제11대 국회의원이 돼 정계에 진출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가슴 속에는 늘 대학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학점을 모두 따놓고 앨범까지 만들어 놓았던 안타까움이 가슴에서 떠나지 않았다.
이 씨는 "너무 아쉬워하다 마침내 오기가 생겼고 '그래, 지금도 늦지 않았다'라는 생각이 번쩍 들더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다시 책을 잡은 그는 1985년 동국대 행정대학원과 1994년 서울대 경영대학원, 1996년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과 고려대 언론대학원, 1997년 서강대 최고경영자과정 등을 거치는 등 공부에 매진했다.
그런 그에게 1998년 꿈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그의 학업에 대한 열정에 감동한 박재규 경남대 총장이 대학 졸업장과 학위를 수여할 수 있도록 배려한 것.
그는 "학교에 가보니 이미 시위사건 제적생 꼬리표가 떨어졌고 밀린 등록금 40여만원을 낸 뒤 당당히 졸업을 할 수 있었다"며 43년만에 졸업장을 안았던 가슴 뭉클했던 그날을 기억했다.
이 씨는 이후 학업에 계속 매진했고 경남대 초대학장인 독립운동가인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 상근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내친김에 박사학위까지 도전키로 하고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고희(古稀)를 훌쩍 넘긴 73살되던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한 박사학위는 결코 쉽게 이룰 수 없었다.
담당교수로부터 수없는 핀잔과 수차례 논문이 거부되기도 했다.
그는 정치적인 스승인 해공 신익희 선생에 대한 공부에 몰두했고 마침내 '해공 신익희의 정치노선에 관한 연구' 논문이 박사학위를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이 씨는 "학생운동 한답시고 공부를 접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절대 후회한다"며 "나이든 사람도 책을 보면서 자기계발을 하면 무슨 일이든 눈에 보이고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신익희 선생 기념관 건립을 위해 발로 뛰고 있는 그는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책을 쓰고 공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야무진 각오를 밝혔다.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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