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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주년 기념일을 앞두고 3·1운동을 세계사적 틀에서 바라보자는 시각이 학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사진은 미국 캘리포니아 교민들이 1920년 3·1운동 1주년 기념식을 치르는 장면. |
그간 우리 정부와 학계는 3·1운동을 1919년에 일어난 자발적 운동이라는 ‘민족주의 시각’에서 살펴왔다.
올해 마련되는 학술대회에서는 우리 내부의 평가와 함께 외국 학계의 시선이 더해질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3·1운동을 우리 내부에서 끄집어 내 세계사 흐름에서 살펴보게 된다.
#‘민족의 외투’ 대신 ‘세계사의 틀’로 접근
3·1운동의 ‘세계사’ 틀 내 이해가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가령 3·1운동이 중국의 5·4운동에 영향을 끼쳤다는 점은 학계의 인정을 받고 있다. 그러나 3·1운동의 세계사적 의미 찾기는 아직 부진한 상황이다. 세계사적 의미 부여는 ‘민족’의 시각 탈피에서 시작되고, 이를 위해서는 외국 학계의 평가가 중요하다.
동북아역사재단이 3·1운동 90주년 관련 학술대회를 3월 9일 여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용덕 이사장까지 직접 나서 미국 등 외국 석학의 참석을 이끌어냈다. 김 이사장은 “3·1운동은 1919년 세계사의 흐름을 토대로 이해돼야 한다”며 “3·1운동은 일제의 억압에 대한 반발뿐만 아니라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중국의 근대화 운동 등과 연결된 ‘세계사적인 운동’이었다”고 평가했다.
학술대회 참가 학자들의 비중과 그들의 논문이 이번 행사 취지와 잘 들어맞는다. 중국 사회과학원 근대사연구소 겅위쯔(耿雲志) 연구원은 ‘중국 근대사와 5·4운동의 역할’을 발표하며, 일본 교토대 다카요시 마쓰오 명예교수는 ‘일본의 1919년과 다이쇼(大正) 데모크라시’를 설명한다. 가장 관심을 사는 학자는 미국 서던 메소디스트대학 토머스 녹 교수로 ‘윌슨의 이념과 세계질서’를 분석한다. 한국 학자로는 김용구 한림대 한림과학원장이 나서 ‘베르사유 강화체제 성립과 한국’을 발표한다.
지난 13일부터 이틀 동안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주최한 ‘1919년 동아시아 근대의 새로운 단계’도 ‘세계사적 조망’이라는 흐름을 반영했다. 동북아 3개국과 미국 학자들이 참여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동아시아’를 주요 분석 단위로 삼았다. 김동순 학술원장은 “3·1운동과 5·4운동의 역사적 의의를 밝히다 보면, 민족해방을 넘어 다양한 근대 주체들의 ‘자기해방’이 이뤄진 과정을 살피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가’의 거시사 대신 ‘개인’의 미시사 차원으로
그간의 3·1 운동 평가에는 주로 ‘국가주의’ 개념이 수반됐다. 하지만 이러한 거시적인 접근 대신 ‘개인’ 중심의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거족적이라는 명분도 중요하지만 3·1운동에 참가한 개인이나 지역의 역사를 조명하는 연구가 병행되지 않으면 온전한 평가가 힘들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미시사 연구가 거의 전무했다. 당장 3·1운동의 지역사를 연구해서 박사학위를 받은 연구자는 2000년 이후 2명에 불과하다.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연구 과제 중 3·1운동 관련 과제는 20건에 불과했다. 이 중 3·1운동 지역사와 관련해 선정된 과제는 1건이었다.
미시사 연구에 대한 관심 부족은 3·1운동에 대한 ‘외눈박이’ 연구를 부를 가능성을 안고 있는 셈이다.
박철규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과장은 “자료가 부족한 점이 3·1운동 연구의 큰 걸림돌”이라며 “젊은 연구자들이 지역사를 파고들어 새로운 연구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박종현 기자 bal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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