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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과 한권의 책]하루하루 살기가 힘든 밥벌이들을 향한 위로

입력 : 2009-02-14 01:15:47 수정 : 2009-02-14 01: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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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오푸스 대표
집행관 일기 - 삶의 최전선에서 만난 날것 그대로의 인생 보고서/기원섭 지음/오푸스/1만2000원


밥벌이의 슬픔을 안다, 라고 말하기에 내 인생은 가벼웠다. 책임질 거라고는 내 몸 하나뿐이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쿨한 척했다. 이것이 개폼이라는 것을 안 것은 어느 해 TV에서 본 한 사내의 뒷모습 때문이었다.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려고 유일한 생계수단인 화물트럭을 팔러 새벽길을 나선 남자. 순간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내의 뒷모습도 흐릿해졌다. 나는 울고 있었다.

그러다 잊어버렸다. 하루하루 살기 바빠 앞만 보던 내가 다시 주위를 둘러본 건 ‘집행관 일기’를 만들면서였다. 버스 한 대로 생계를 잇는 어느 가장이 지입차주라는 허점 때문에 두 눈 뜨고 밥벌이를 빼앗기고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절규한다. 자신의 빚도 아닌데 버스회사 사장의 빚을 뒤집어쓰고 가압류당했으니 환장할 일이다. 은행빚을 갚을 길이 없자 모든 것을 포기해버린 듯한 무표정 가족의 집행 날, 어린 아들이 다리에 딱 갖다 붙인 두 주먹을 부들부들 떤다. 무표정은 분노를 감춘 마지막 자존심이었다.

기원섭 지음/오푸스/1만2000원
가진 자와 없는 자, 뺏는 자와 뺏기는 자로 나뉘어 날을 세우는 집행현장이니 세상사 다 그런 거 아니냐고? 아니다. 이해관계를 떠난 뜻밖의 착한 마음들이 많다. 10만원 월세를 3년간이나 밀렸다는 임대아파트의 아주머니, 사연을 묻는 집행관에게 눈길 한 번 안 주었다. 그러나 문간방에 걸린 소녀의 교복 한 벌에 마음이 흔들린 집행관은 채권자를 설득해 집행을 미루고 만다. 그 싸늘한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빨고 다려 입혔을 교복의 주인공이 받을 충격 때문이었다. 빌딩 지하 구멍가게, 여기도 월세가 밀려 쫓겨날 처지였다. 그런데 채권자 대신 참석한 직원 청년, 가게 아주머니의 딱한 사정에 빌딩 주인을 설득하러 뛰쳐나간다. 사장이 자기 아버지도 아니고 가게 아주머니가 자기 어머니도 아닌 이 착한 청년은 무슨 맘이었던 걸까.

32년간의 검찰수사관 생활 동안 전직 두 대통령을 구속한 역사의 현장은 이제 지나간 뉴스일 뿐이라는 저자. 그가 인생 2막으로 선택한 집행관이라는 직업은 서울 하늘 아래 인간사의 온갖 그늘을 누비며 대한민국 서민들의 삶을 세밀화처럼 그려내게 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지갑도 닫히고 마음까지 막히는 게 세상 이치지만, 힘든 시절일수록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되새길 줄 알아야 희망을 지킬 수 있다는 저자. 그의 위로는 밥벌이의 슬픔을 아는 우리 모두에게 유효하다. 이 많은 슬픔과 아픔이 일어나는 서울 하늘 아래, 나와 내 가족의 무사한 하루를 돌아보면 당신도 신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김수영 오푸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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