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포항 고속도로를 이용해 포항 방면으로 달리다 영천시 화북면 지역에 들어서면 좌측으로 연이어 늘어선 산들의 최정상에 돔형 건물이 우뚝 서 있다. 바로 한국천문연구소 소속의 보현산 천문대다. 이곳 연구원들은 모든 이들이 잠드는 밤이 되면 지구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짐작조차 하기 어려운 곳에 있는 별들을 연구하고 있다.

천문대 관계자의 허락을 얻어 야간에 보현산 천문대에서 내려다본 광경은 한마디로 절경이었다. 발 아래에서는 한반도의 척추인 태백산맥 줄기들이 멀리 동해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고 영천과 포항에서 나오는 불빛들이 하늘을 향해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밤이면 천문대 주변은 암흑천지로 변한다. 연구원들이 불빛을 가리기 위해 모든 창문을 두꺼운 커튼으로 가리는 데다 가로등도 일체 켤 수 없어 우수수 떨어질 듯이 많은 별들이 밤하늘에서 관측된다.
짐승들의 발자국과 낙엽 떨어지는 소리만 들릴 만큼 조용한 이곳에서 1996년부터 13년째 근무하고 있는 김강민(52) 박사를 만났다. 김 박사는 96년 4월 보현산 천문대가 완공되기 전부터 이곳에서 준비요원으로 파견돼 15년간 산속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큰 망원경인 직경 1.8m짜리 광학 망원경을 관리하고 야간이면 이를 이용해 천체 연구를 하는 것이 김 박사의 일이다.
![]() |
◇직경 1.8m짜리 광학 망원경을 살펴보며 이상 유무를 확인하고 있는 김강민 박사. |
일반 망원경을 이용한 영상 관측은 빛이 몇년이나 지나야 도착하는 단위인 광년(光年) 거리에 있는 행성의 정확한 관측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행성에서 나오는 빛의 파장 등을 분석해 스펙트럼을 만들어 행성의 성분과 구성, 자전 속도와 자기장 등 모든 정보를 분석할 수 있는 망원경 분광기는 천체 연구에 가장 필수적인 장비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35억원이나 되는 비싼 가격이 문제였다. 김 박사는 국내외 연구진의 자문과 기술 지도를 받고 관련 자료를 뒤져 15억원을 들여 동급에서는 세계에서 성능이 가장 우수한 분광기를 만들어 망원경에 설치했다.
이런 이유로 보현산 천문대는 지금도 국내 연구진들이 천체 관측을 위해 찾고 있으며 러시아 연구진도 지난해 9월까지 이곳에서 수년간 연구를 하고 떠났다.
“천문학은 100㎞ 떨어진 곳에 있는 촛불을 망원경으로 보고 성분과 움직임 등을 조사하는 학문”이라고 말하는 김 박사는 “그러나 이 망원경은 태양계와 은하계에서 가까운 별만 관측이 가능해 우주의 기원과 진화 연구를 위해 대구경 망원경 도입이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일본이 이미 1999년부터 직경 8.4m짜리 망원경을 도입해 사용하고 있는 등 전 세계에는 이미 구경 8m 이상의 망원경이 16개나 가동 중이라는 게 김 박사의 설명이다. 김 박사는 국내에서 사용 중인 망원경으로는 천체 연구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한국은 미국과 호주가 공동으로 제작을 추진 중인 직경 25m짜리 GMT(Giant Magellan Telescope) 망원경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으나 정부의 재정 지원이 아쉽다”고 김 박사는 말했다.
왜 천문학을 택해 평생 아무도 없는 산속에서 올빼미 생활을 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는 “고향인 목포에서 자라면서 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가져 이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망망대해에서 등대지기도 보람을 갖고 근무하고 있는데 천문대 생활이야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서울에 갈 수도 있고 언제든지 전화도 가능한 데다 가끔은 본부가 있는 대전에 회의 참석차 가기도 해 어려움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또 이곳은 별빛이 보여야 모든 일이 시작되기 때문에 10년 넘게 저녁 9시부터 새벽 6시까지 일하고 낮에 자는 직업병이 생겨 가족과 시간을 보내려 주말에 집에 가도 낮에는 잠만 자다 오기 때문에 가장 역할을 못한 지 오래됐다”며 그는 웃었다.
오랜 산 생활을 그만두고 대전에 있는 본부로 귀환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의사는 없느냐는 질문에는 “함께 4년 동안 일했던 러시아 친구가 얼마 전 멕시코로 떠나 허전해 나 대신 분광기를 유지 관리할 새로운 사람이 있다면 가겠지만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면 이곳에서 계속 근무하겠다“고 말했다.
“평생 우주를 연구하며 살았는데 외계인의 존재를 믿느냐”고 묻자 그는 “지금은 태양계 밖의 은하계의 별들도 공전과 자전을 하고 있는 것이 포착되고 있기 때문에 외계 행성에서도 외계인이 우리처럼 망원경을 이용해 태양계를 연구하지 않는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마지막으로 김 박사는 “천문학은 당장 실생활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우주의 신비와 별을 연구하는 학문이기 때문에 연구 실적이 상용화되지는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국력을 기르는 데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모든 사물이 잠들어 있을 때 칠흑처럼 캄캄한 산속에서 귀를 째는 차가운 바람소리를 들어가며 묵묵히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천문학도들을 위해 국민들의 관심과 성원이 절실하다”는 김 박사는 “사람이 모두 돈되고 편한 일만 할 수 없고 누군가는 밀알처럼 희생해야 되지 않겠느냐”며 다시 별빛 스펙트럼이 가득 찬 컴퓨터 모니터로 눈길을 돌렸다.
대구=전주식 기자 jschun@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