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종교 갈등 얽히고설켜
체첸·그루지야 등 곳곳 유혈 충돌… '신냉전' 분위기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1200㎞에 걸쳐 펼쳐진 캅카스산맥은 유럽 최고봉 엘브루즈산(5642m)을 비롯한 높은 산봉우리와 깊은 계곡이 광대한 지역에 펼쳐져 있다. 캅카스산맥 남쪽 사면으로는 아제르바이잔, 그루지야, 아르메니아가 있고, 북쪽은 러시아연방 내 공화국인 다게스탄, 체첸, 잉구셰티야가 어깨를 맞대고 있다. 북쪽 멀리로는 러시아,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이란과 터키가 자리 잡고 있다.
다민족·다종교가 분포한 캅카스 지역은 분쟁의 역사가 깊다. 과거 오스만 제국과 이란, 러시아 등이 이 지역을 손에 넣기 위해 오랜 쟁투를 벌였다. 1828년 러시아가 캅카스 전체를 합병한 뒤 소비에트연방이 지배했다. 소비에트 철권통치 아래 숨죽였던 여러 민족들은 1991년 소련이 붕괴되자 너도나도 독립을 요구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1989년 오세티아·잉구슈 분쟁을 시작으로 1991, 1992년 그루지야·남오세티아 내전과 압하지야 전쟁이 잇달아 터졌다. 1994년과 1999년 제1, 2차 체첸전쟁이 발발했고, 1999년에는 러시아의 다게스탄 침공이 이어졌다.
여러 분쟁 가운데 체첸의 분리독립 운동은 역사가 오래되고 희생자도 많았다. 체첸 민족은 15세기엔 오스만 제국에 맞섰다. 16세기부터 러시아 제국에 대항했지만 1864년 러시아에 병합됐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자 독립을 선언한 뒤 지금까지 러시아와 갈등하고 있다. 러시아·체첸 전쟁으로 인한 민간인 희생자 수만 10만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지난해에는 그루지야와 러시아가 충돌해 유혈 참극을 빚었다. 그루지야 내 친러 자치공화국 남오세티아가 분리독립 움직임을 보이자 그루지야가 군대를 투입해 이를 진압했다. 여기에 러시아가 끼어들면서 전쟁이 확대됐다. 양측의 충돌은 또다시 미국의 개입을 불러들여 ‘신냉전’ 분위기까지 조성했다. 그루지야 전쟁은 한 달 만에 총성이 멎었지만 2000여명이 숨졌다.
캅카스 지역의 유혈 충돌 위기는 올해도 계속될 전망이다. 실타래처럼 꼬인 인종·종교 갈등이 대부분 그대로 남아 있는 데다 미국과 유럽이 러시아와 새로운 갈등의 불씨를 댕기고 있다. 미국은 최근 아제르바이잔과 그루지야 등 남부 캅카스 국가와 협력을 강화하고 아프가니스탄 주둔 미군을 위한 새로운 보급로를 뚫을 계획이다. 유럽연합(EU)은 아르메니아와 그루지야 등으로까지 자유무역지대를 확대하고 비자 면제 협정을 맺는 등 ‘유럽 국경’ 확대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캅카스산맥이 해묵은 민족 갈등에 이은 서방세계와 러시아 간 ‘대리전’으로 더욱 신음할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안석호 기자 sok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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