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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볼일 없는 필부필녀의 삶 그속에 ‘명랑한 우수’가…

입력 : 2008-12-19 17:52:11 수정 : 2008-12-19 17:5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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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예 염승숙씨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 뱀처럼 긴 꼬리를 지닌 커다란 쥐가 있다. 이름하여 ‘뱀꼬리왕쥐’. 꼬리뼈를 집중적으로 주물러주는 직업을 지닌 물리치료사 주인공이 이래저래 짜증이 왈칵 몰려든 어느 비오는 날,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뒹굴던 더러운 쥐 인형의 옆구리를 힘껏 발로 찼다. 아뿔싸, 그 인형이 갑자기 뱀꼬리왕쥐로 변해 자기네들 세상으로 그를 나포해가려고 한다.

2005년 스물세살에 이 작품 ‘뱀꼬리왕쥐’를 ‘현대문학’에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 신예작가 염승숙(26 ·사진)씨가 첫 소설집 ‘채플린, 채플린’(문학동네)을 펴냈다. 모두 8편의 작품이 묶여 있는데, 하나같이 환상과 농담이 어우러진 독특한 체취를 지닌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뱀꼬리왕쥐가 채근한다. 자신들의 세계로 들어오기 위해선 그저 ‘당신의 꼬리뼈를 내놓는다는 간단한 약속만’ 하면 된다고.

“제 소설 속의 환상은 일차적으로는 재미를 위해서고, 화자나 사건 안으로 들어가면 소설 속 인물들의 절박함, 혹은 생의 절실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장치인 셈이지요. 그 꼬리뼈라는 거, 분명히 있지만 인간에게만은 퇴화돼서 보이지 않지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지니고 있는 거 같아요.”

표제작 ‘채플린, 채플린’으로 넘어가면 보이지 않는 것, 혹은 볼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과 두려움과 농담은 절정으로 치닫는다. 누군가 갑자기 ‘여봇씨요’라고 어깨를 툭툭 치면 “네?”라고 뒤돌아보다 눈꺼풀을 깜빡이지 못하고 입술도 떼지 못한 채 희극배우 채플린 같은 화석으로 변한다. 140여명이 정체 모를 ‘여봇씨요’에게 목숨을 잃어 온 나라에 ‘여봇씨요 경계령’이 내린다. 황당하지만 소설 속에서는 즐겁고 무겁고 비장하다. 

염승숙씨는 동국대 국문과 대학원에 재학 중이다. 염씨는 천안 복자여고 문예반 시절 문학에 접한 뒤 동국대 주최 백일장에 입선했다. 이후 이화여대에 수시 합격했지만 소설에 끌려 동국대 문예창작과에 특기자 전형으로 진학했다. 일본이나 프랑스 작가들에 빠지기 쉬운 문청 시절에 독특하게도 한국 작가, 그중에서 최인호 전상국 이승우 등의 작품을 홀로 사사하며 이 단계에 이르렀다. 성장기에 특별한 상처를 받은 일 없는 무난한 중산층 가정의 일남일녀. 그가 소설 속에서 보여주는 별 볼일 없는 필부필녀의 삶 또한 또 하나의 환상은 아닐까.

“동시대에 같이 살아가고 있는 인물들을 바라보며 빌려왔을 뿐인데 사람들은 이들을 보고 소외되고 비루하다고 하더군요. 쓰는 이도 재미있고 읽는 이도 재미있는 소설, 소설적인 재미를 잃지 않는 소설을 써나갔으면 좋겠어요.”

염승숙의 소설에서는 ‘명랑한 우수’가 느껴진다. ‘아름다운 슬픔’이 형용모순인 것처럼, 그의 문장과 문체에서는 ‘듬직한 명랑’이 느껴진다. 듬직한 명랑이라니!

조용호 선임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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