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닷컴] 지난 10월 21일 서울 중구 충무아트홀. 출연배우들과 많은 매체들이 자리한 가운데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 연습 현장이 11월 21일 첫 공연을 한 달 앞두고 공개됐다. 사실 이날 언론들이 관심을 보였던 것은 탤런트 노주현의 연기생활 40년만에 첫 뮤지컬 도전이었다. 최근 많은 가수, 탤런트들이 뮤지컬에 도전하고 있는 가운데 중년의 배우가 뮤지컬 무대에 처음 오른다는 것 자체가 화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습 현장 공개가 끝난 뒤 무대 취재를 자주 접하지 않은 연예담당 기자들을 놀라게 한 사람은 따로 있었다. (공연 담당 기자들에게는 당연한 느낌이었겠지만 말이다). 노주현이 맡은 아버지 '테비에'역을 더블로 연기하는 배우 김진태였다.
아무렇지도 않게 연습실 가운데로 걸어나와 내뱉은 대사에서 느껴지는 관록과 성량이 늘 그렇듯이 무심하게 취재를 하던 기자들의 고개를 들게 만든 것이다. 드라마 '대조영'이나 '불멸의 이순신'에서 시청자들을 사로잡는 연기를 하긴 했지만, 브라운관이 아닌 실제 바로 앞에서 김진태의 목소리와 연기를 보는 이들에게는 김진태가 가지고 있는 중심이 얼마나 큰지를 짧은 시간안에 보여준 것이다.
"오늘은 감기가 걸려서 목이 안좋은 편이야. 목소리가 굵은 것은 따로 연습한 것은 없고 천성적으로 타고난 것이지 뭐. 20대부터 노인 역을 많이 해서 그런 것도 있을꺼야. 1970년대 명동 국립극장 극단 가교에서 데뷔했는데, 당시 연기를 하는 배우들 중에 내가 가장 덩치가 커서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노인역을 많이 맡았지"
김진태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중견탤런트 중 한명이지만, 실제 그의 가치는 무대 위에서 빛난다. 이때문에 드라마 '대조영'에서 연개소문 역으로 시청자들에게 극찬을 받은 이후 단편인 '전설에 고향'에만 잠깐 출연했을 뿐, 근 1년간을 뮤지컬 무대위를 누볐다.
"어떻게 하다보니 지난 해 12월부터 뮤지컬 '러브'를 시작으로 뮤지컬에만 오르게 됐어. '러브' 끝나자마자 '마이페어레이디'를 하게 되었고, 그거 끝나고 다시 '지붕위의 바이올린'을 하게 되었고말이야"
뮤지컬 '지붕위의 바이올린'에서 김진태는 엄격하면서도 전통을 지키려는 아버지 '테비에'역을 맡았다. 물론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과거 10여년 전에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된 '지붕위의 바이올린'에서도 김진태는 같은 역을 맡았다. 김진태는 비록 다른 나라 이야기지만 '테비에'는 한국 아버지와 닮았다고 말한다.

"'테비에'는 겉으로 보기에는 굉장히 엄격한데 한국 아버지하고 크게 다를 것이 없는 것 같아. 우크라이나 지방의 유대인들 이야기인데 굉장히 동양적이야. 전통이라는 것에 대해서도 우리도 유교 사상같은 것이 있잖아. 전통을 중시하는 모습이 똑같지. 또 그들이 처해있는 환경이 시베리아에 강제 이주당한 우리 고려인과도 비슷하고 말이야. 그런 내용들이 남의 이야기 같지 않더라고. 여기 나오는 아버지도 겉으로는 굉장히 전통을 중요시하고 엄격한 것 같은데 내용은 보면 여리고 딸들에게 다 져주잖아. 첫째는 부자남편 얻어주려고 했는데 자기 좋아하는 가난한 재봉사에게 보내고, 둘째도 떠돌이 공산당원과 눈 맞아서 시베리아까지 가고, 셋째는 당시 금기인 러시아인과 사랑하고. 그런데 다들 어쩔 수 없이 보내고 마음으로 용서해주지. 이런 것이 우리네 아버지 모습하고 똑같아. 외국 아버지 같지 않더라고"
뮤지컬에서처럼 딸을 키우고 있는 김진태는 뮤지컬과 같은 상황이 벌어지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자신이 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은 본인의 경험도 한 몫했다.
"뮤지컬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뭐. 자식 이기는 부모 없잖아. 그리고 요즘 세상에 반대한다고 억지로 되겠어. 되돌아보면 나 스스로도 찬성하는 결혼은 안한 것 같아. 가난하고 연극만 할때니 돈이 있겠어 뭐가 있겠어. 부모들이 탐탁하게 생각하지 않았지. 우리 세대도 그런데 젊은 세대는 더 그렇겠지 뭐"
이번에는 노주현과 더블캐스팅으로 무대에 서지만 10여년 전에는 혼자서 그 역을 소화해냈다. 그때문에 당시에는 젊었는데도 불구하고 진땀을 많이 흘렸다고 한다. 그러나 김진태는 그 전후로도 사실 '혼자서' 땀을 많이 흘렸다. 더블캐스팅이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이다. 뮤지컬에서 자신의 역할을 다른 사람이 하는 것을 보는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더블로 같이 오르는 노주현에 대한 생각은 어떨까.
"사실 조금 걱정은 했어. 원래 이쪽이 노래실력이든 뭐든 소문이 나는데 주현이형은 노래를 한다는 소리를 못 들었거든. 그런데 이번에 보니까 걱정에 비해서 굉장히 연구도 많이 하고 개인연습을 많이 한 것 같아. 아무튼 굉장히 놀랐어. 그렇게 잘 따라올지 몰랐거든. 그리고 연습하는 것을 보니 주현이형은 주현이형대로의 모습이 있고 난 나대로의 모습이 있어. 디테일한 부분에서는 서로 공유할 것은 공유하는 식이지"

46년생과 51년생인 노주현과 김진태는 사실 노래와 춤, 연기를 한꺼번에 하는 뮤지컬이 힘에 겨울법도 했다. 그러나 김진태는 "뭐 할수없이 따라해야지"라며 무심하게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렇게 무심할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뮤지컬 무대가 재미있고 즐거워서 그렇다고 한다. 현재 무릎이 조금 안 좋은 상태이면서도 젊은 배우들과 호흡을 맞추며 무대 위에 설 수 있는 이유는 오로지 그 때문이다. 또 그런 모습을 보이기 위해 좋아하는 술도 부담이 될까봐 자제를 하는 편이다. 이게 방송과 연극, 뮤지컬에서 김진태라는 배우가 관객들에게 안정감을 주는 요인이기도 하다. 여러 분야에서 활동하는 것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에 대해 묻자 김진태는 "각각 어려움이 있어"라고 말하면서도 기본적으로 모두 갖춰야 할 것이 분명히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후배들이 그러한 점을 이해해한다고 말한다.
"사실 뮤지컬이라는 것이 그 저변에는 리얼리즘과 다른 것이 없어. 단지 말로만 하던 시대에서 이제는 지루하니까 음악으로 표현하면서 변천된거지. 그런데 신세대들은 그 저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겉만 보는 것 같아. 젊은 배우들의 경우에 뮤지컬을 하면서 음악과 춤만 되면 어느 정도 넘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저변의 리얼리즘을 이해 못하는 경우도 있어. 본질을 모르고 겉만 흉내를 내는거지. 극 속에 담아있는 뜻을 잘 표현해야 하는데 잘못하면 겉멋만 들어버린단 말이지. 그런 것이 조금 아쉬워. 요새는 고전 뮤지컬을 많이 하잖아. '마이페어레이디'도 그렇고 '지붕위의 바이올린'도 그렇고. 이 고전 뮤지컬을 보면 사실 기본적으로 리얼리즘이 있는데 이런것에 젊은 친구들이 접근하는데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 연예인들이 무대에 진출하는 사례에 대해 물었다. 과거 김진태가 데뷔할 때만 해도 연극 등 무대에서 먼저 기량을 닦은 뒤에 방송을 나가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최근 역행하는 모습이 김진태에게는 낯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제작하는 쪽에서 흥행에 신경을 쓰고 해야하니 이름이 많이 알려진 친구들을 무대에 올리는거겠지. 그 친구들과 같은 무대에 서면 답답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 때문에 연습이라는 것을 하는 거지. 서로 안되는 것을 이끌어주고 말이야. 연극이나 뮤지컬이 다 마찬가지지만 조화를 이뤄야 하거든. 앙상블은 물론 주조연 모두가 앙상블을 이뤄야 해. 서로 안되는 부분을 지도를 하며 이끌어 나가야하는거지"
사실 사람들은 김진태가 방송에서 보이지 않자 "요즘 뭐하시는지 궁금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장군이나 엄격한 아버지 역을 많이 나오면서 강한 인상을 준 그였고, 최근 브라운관에서 그같이 무게감을 가진 중견탤런트들이 많이 필요한 시점이기에 더욱 그렇다. 뮤지컬 일정때문에 방송 일정을 모두 포기해야할 정도 바쁜 김진태였지만, 무대를 찾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그는 긴 휴식기를 가진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 2년정도 방송은 안했지. 사람들은 방송 안하면 죽은 줄 알아. 요새 뭐하시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더라고. 내가 얼마나 바쁜지 모르고 말이야. 방송만 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왜 요즘은 활동 안하냐고 물어보지. 어떻게 하다보니 계속 하게된 뮤지컬도 이번에 끝내고 조금 쉰 다음에 방송을 다시 해야지"
40년 가까운 연기 생활을 한 김진태도 더 하고 싶은 역할이 있을까.
"글쎄. 배역 운이 좋아서 그런지 몰라도 되돌아보면 참 좋은 역할을 많이 해봤어. 그런데 배우라는 것이 그런 것 같아. 숨 떨어지는 순간까지 할 수만 있으면 해보고 싶은 역할은 많지. 과거에 해봤던 역할도 다시 해보고 싶기도 하고 말이야"
유명준 기자 neocross@segye.com 팀블로그 http://comm.blo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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