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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박군 고문치사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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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10-30 21:16:38 수정 : 2008-10-30 21:1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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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철아/ 살아서 보지 못한 것 살아서 얻지 못한 것/ 인간, 자유, 해방/ 죽어서 꿈꾸며 기다릴 너를 생각하며/ 찢어진 가슴으로 네게 약속한다/ 거짓으로 점철된 이 땅/ 너의 죽음마저 거짓으로 묻히게 할 수는 없다.(박종철 추모시 ‘우리는 결코 너를 빼앗길 수 없다’)

1987년 1월은 어느 해 겨울보다 혹독하게 추웠다. 강권통치는 극에 달했다. 살을 에는 듯한 압정에 대해 언론과 국민은 입을 다문 지 오래였다. 수사기관이 명백한 범죄인 고문을 가하는 것은 예사였다. 물고문, 전기고문, 고춧가루 탄 물을 코에 넣기 등 그 방법이 잔혹하기 이를 데 없었다.

서울대 언어학과 3학년인 박종철군은 귀갓길에 남영동 대공분실에 불법 연행됐다. 수배 중인 선배가 있는 곳을 대라며 온갖 고문을 받았지만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10여 시간의 물고문 끝에 그는 숨졌다. 경찰은 증거를 인멸하려고 검찰에 시신 화장을 신청했으나 거부당한다. 경찰은 사흘 뒤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치안본부장은 경찰이 박군을 상대로 수사하던 중 책상을 ‘탁’ 치니 ‘억’ 하며 쓰러져 사망했다고 밝힌 것이다. 세간의 조롱을 받기에 충분했다. 단순 쇼크사라는 주장은 검찰수사에서 새빨간 거짓말로 밝혀졌다.

검찰이 엊그제 60년 동안 역대 수사 사례 가운데 ‘가장 의미있는 사건’ 1위로 박군 고문치사 사건을 자체 선정했다. 검찰이 자랑할 만도 하다. 이 사건이 직선제 개헌 등 6월 민주화운동의 기폭제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사건 은폐 사실은 검찰수사에 앞서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의 폭로로 드러났다. 어째 검찰이 공을 독차지한 느낌이 든다.

오늘이 검찰 창설 60주년이다. 검찰은 공 못지않게 과오도 많이 남겼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함에도 걸핏하면 ‘권력의 시녀’, ‘정치검찰’이라는 비난을 받는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코드 맞추기식 수사는 단골메뉴가 돼 버렸다. 사정기관인 검찰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고울 리가 없다. 얼마 전 사법부는 출범 60주년을 맞아 자기 성찰을 통해 과거사에 대해 사과하고 국민의 용서를 구했다. 오늘 검찰 60주년 기념식에서 임채진 총장이 어떤 고백을 할지 궁금하다.

박병헌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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