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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혼 등의 위기를 겪고 화려하게 재기한 최진실의 최근 모습. |
◆‘CF스타’로 화려하게 데뷔=스무살이던 1988년에 MBC 탤런트 특채로 데뷔한 최진실은 그해 MBC 드라마 ‘조선왕조 500년-한중록’으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이듬해 CF에서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에요’라는 말로 깜찍한 외모와 발랄한 이미지를 통해 강한 인상을 남기며 일약 하이틴 스타의 대명사로 떠올랐고, 이후 20년 동안 톱스타로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영화 ‘나의 사랑 나의 신부’(1990년), ‘미스터 맘마’(1992년) 등과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1990년)에서 그는 전매특허인 발랄하고 명랑한 연기를 펼쳤다. 특히 최수종과 함께 출연한 드라마 ‘질투’(1992년)를 통해 그는 전 국민의 사랑을 받는 스타로 발돋움했다. 이후에도 드라마 ‘별은 내 가슴에’(1996년), 영화 ‘마누라 죽이기’(1994년), ‘편지’(1997년) 등 출연작마다 흥행에 성공했다.
본격적으로 연기에 물이 오른 1990년대는 최진실의 전성기였다. 1991년 대종상, 춘사영화제, 청룡영화제 신인상을 싹쓸이하고 대종상 여우주연상(1995년), 백상예술대상 인기상(1991년, 1995년, 1997년), MBC연기대상 대상(1997년), 한국방송대상 여자탤런트상(1998년) 등 굵직한 상을 잇달아 거머쥐며 톱스타로 자리를 굳혔다. 그는 연기활동을 통해 깜찍함과 청순함 등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여배우로서의 발자취를 쌓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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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BC 드라마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의 한 장면. |
◆한 편의 드라마 같은 인생=최진실은 사생활과 관련해 잦은 스캔들과 소문으로 세간의 입방아에 오르내리며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을 살았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어려운 가정환경을 극복하고 스타로 발돋움했으며, 여러 가지 아픔을 겪으면서도 ‘똑순이’같은 모습을 보여준 그에게 많은 국민이 응원을 보냈다.
최진실은 1994년 전 매니저였던 배병수씨가 살해되는 사건으로 공판에서 증인으로 출석하며 온갖 소문에 시달렸다. 2000년 프로야구계 톱스타인 조성민과의 결혼은 4년을 채우지 못했다. 2004년 8월 조성민이 최진실의 집에서 폭력을 휘둘러 긴급체포되는 사건까지 일어났고, 그해 9월 최진실은 결혼생활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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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5년 KBS 드라마 ‘장밋빛 인생’에 출연한 최진실과 손현주. |
하지만 그는 2005년 KBS 2TV 드라마 ‘장밋빛 인생’으로 재기했다. 이혼 후 암에 걸리면서도 악착같이 살아가는 ‘맹순이’역을 통해 뛰어난 연기력을 선보여 KBS 연기대상 여자 최우수연기상과 백상예술대상 방송부문 최우수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올 초에는 MBC TV ‘내 생애 마지막 스캔들’에서 ‘줌마렐라 신드롬’을 일으키며 ‘제2의 전성기’를 구가했으며 최근에는 자녀의 성을 엄마의 성으로 바꿔 당찬 ‘싱글맘’으로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백소용 기자 swini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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