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한국, 일본의 대표들이 베이징에 갔다가 북한 대표가 오지 않는 바람에 머쓱해져서 중국 대표에게 북한을 설득해달라고 요청하고 돌아선 광경이 지금의 상황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국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 아마도 6자 회담의 틀을 지닌 회담이 열리겠지만, 그것은 새로운 협상의 시작이지 원래의 6자 회담의 연장은 아닐 것이다.
6자 회담은 처음부터 미국이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미국이 그런 복잡한 기구를 고른 까닭은 둘이었다. 하나는 ‘악한 국가(rogue state)’인 북한과 직접 협상하는 형국을 피하는 것이었다. 북한이 미국과의 직접 협상을 통해서 정상적 국가로 대접받고 싶어했으므로 미국으로선 그럴 듯한 선택이었다.
다른 하나는 중국을 통해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효과적으로 넣을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북한은 줄곧 생존을 중국에 의존해 왔고, 당시 중국은 미국의 뜻을 거스를 처지가 못 되었다.
6자 회담은 처음엔 미국의 의도대로 진행되었다. 그러나 이라크 전쟁의 늪에 빠져 미국이 북한에 대한 군사적 제재를 고려할 수 없게 되자, 회담은 이내 멈췄다. 외교는 그것을 떠받칠 힘이 있을 때 효과를 낸다. 미국이 전적으로 외교를 통해 문제를 풀려 한다는 것이 드러나자 북한은 공산주의자들이 협상에서 늘 쓰는 전술들을 쓰면서 회담을 주도하기 시작했다. 갖가지 핑계들을 대며 회담을 지연시키는 전술과 합의된 내용을 재해석해서 새로운 문제들을 만드는 전술은 공산주의자들과의 협상 경험이 없는 미국 외교관들을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그 사이에 중국의 미국에 대한 상대적 지위는 빠르게 높아졌다. 그래서 미국으로선 북한에 압력을 넣으라고 중국을 압박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중국을 압박하는 통로가 되리라고 여겨진 기구가 오히려 의장국인 중국의 위세를 높여서, 미국이 중국에 매달리는 처지가 되었다.
물론 중국은 그런 상황을 즐긴다. 세계에서 가장 강하고 반세기 전 한국전쟁에서 자신과 싸웠던 나라가 자신에게 매달리는 것이 어찌 즐겁지 않겠는가?
여기에 본질적 문제가 있다. 중국으로선 자신이 즐기는 상황을 끝내고 싶지 않다. 한국전쟁에서 자신이 도와준 북한에 대한 역사적·심리적 호감도 있다. 실질적 차원에서도, 북한의 존재는 동아시아의 지정학에서 중국에 결정적 도움이 된다. 미국과 중국이 점점 대립적 관계로 되어가는 지금, 미국이 북한 때문에 세계적 전략에서 어려움을 겪는 것은 중국으로선 큰 이점이다.
중국이 북한에 핵무기를 포기하라는 압력을 전혀 넣지 않고 오히려 북한을 감싸서 북한이 시간을 벌도록 한 것은 바로 그런 사정 때문이다. 미국의 조지 부시 정권이 임기 안에 외교적 성과를 얻으려고 너무 서두르다 북한에 말려든 점도 있고 한국의 노무현 정권이 어리석게도 미국의 발목을 잡은 점도 있지만, 6자 회담을 실패로 이끈 결정적 요인은 역시 중국의 그렇게 야릇한 태도였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는 점점 기정사실이 되어간다. 핵무기에 관한 한, 시간은 북한 편이다. 이제 우리는 6자 회담이 실패한 사연에서 옳은 교훈들을 얻어야 한다. 특히 중국의 야릇한 태도는 우리가 깊이 성찰할 대목이다. 우리가 중국의 영향을 점점 크게 받는다는 사실은 그런 성찰을 더욱 절실하게 만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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