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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희 한국정보통신대 |
농심에는 자연의 마음, 균형, 분산의 도가 지배한다. 일정한 토지에서의 수확이 거듭될수록 지력(地力)이 다하여 수확량이 떨어진다. 경제학 원리로는 수확체감의 원리가 지배한다. 반면 공상에는 인공의 세계요, 집중과 효율의 원리가 지배한다. 즉 투입의 증가 이상으로 산출을 증가시키는 수확체증의 원리가 점점 확대되는 세계이다. 기계문명, 산업혁명이 도입된 이래 기술의 발전은 이러한 수확체감원리에 대한 수확체증원리의 확대 역사라고도 할 수 있다. 급기야 정보화, 디지털화는 수확체증원리의 꽃을 피우고 있다고 하겠다. 수확체증원리는 매우 효율적이나, 소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일으켜 중심을 허약하게 함으로써 시스템을 매우 취약하게 만들어 버린다. 다양성보다는 한쪽으로 쏠리게 하고, 수렴보다는 발산을, 경쟁보다는 독과점을 좋아하게 만든다.
수확체증원리가 만연되는 것이 두려운 것은 가치의 획일화에 있다. 가치의 획일화가 두려운 것은 사회 곳곳에 거품이 끼기 때문이다. 거품은 기본적으로 획일화된 가치에서 비롯된다. 가치관이 한 곳에 몰려있어 행동이 집단화되기 쉽고, 집단화 과정에서 지나침과 과도함이 발생하여 거품이 발생하게 된다. 정보화는 구성원들 간 정보의 유통속도를 매우 빠르게 하여 의사결정이나 행위에서 시공간적 응집화의 경향을 지니고 있어 기본적으로 수확체증의 원리와 가깝다. 정보를 많이 누리는 부문과 그렇지 못한 부문 간의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도 바로 수확체증원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더구나 정보화는 우리의 오랜 중앙집권적 특성과 결부되면서 수확체증원리가 더욱 기세를 떨치게 하고 있다. 거꾸로 우리의 중앙집권적 속성이 정보화, 디지털화를 선호했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양자가 서로 간절히 원하면서 상승작용을 일으키고 있는 형국이다.
과거 선비정신은 인간행태의 정신적인 축을 담당함으로써 다원화 가치를 지향하였다. 이(利)보다는 의(義)로움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자존을 지키고 부화뇌동하지 않았다. 기실 500년 조선왕조의 근간이었다. 그러나 점차 선비정신에 부가 결부되어 특권층을 형성하고 농공상과의 격차가 두드러지게 됨으로써 모든 사람들이 문을 숭상하는 가치의 획일화로 변질돼 갔다. 실학은 획일화 가치로부터 문무 및 사농공상 간의 다원화 가치를 실현하고자 하였으나 사대부의 경직성과 이후 개화기의 혼란과 식민지화를 겪으면서 질서의 단절과 왜곡이 발생하는 운명을 맞이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술을 중요시하고 관심을 가지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삶을 변화시키고 나아가 우리의 심성을 변화시키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사는가는 실제 세상을 변화시키는 근본이다. 그것이 기술의 패러다임이요, 원리요, 궁극의 메시지이다. 창조, 선진, 혁신, 이러한 것을 외치면서도 정작 우리의 마음과 행동은 그에 반하고 있지는 않은가 되돌아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러한 것은 다원화 가치를 먹고 자라기 때문이다.
이덕희 한국정보통신대 IT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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