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아닌데 싶어서 이제 그만했으면 싶었다. 촛불시위의 축제 분위기 속으로 다른 욕망들이 섞여드는 걸 보기가 괴로웠다.”
소설가 박완서(77·사진)씨가 월간 ‘현대문학’ 9월호에 기고한 에세이 ‘8월의 단상’에서 촛불시위에 대한 생각을 털어놓았다.
8월의 무더위를 잊게 해준 베이징올림픽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박씨는 개막식 선수단이 입장하는 모습을 통해 63년 전 고향 개성에 점령군이 진주할 때의 광경을 떠올리며 당시 기억을 되살렸다. 그는 이어 올림픽에서 선전한 우리 선수들에 대한 찬사와 함께 국민의 관전 태도를 호평했다. 그렇지만 “축구 골대 줄여라, 핸드볼 연습하게” 혹은 “태환이 수영하게 축구장에 물 받으라”던 네티즌들의 가시 돋힌 유머를 거론하면서 촛불집회 때 청소년들이 거침없이 쏟아낸 감정적 언사와 과격한 시위양상을 비판했다.
“전혀 예기치 못한 새로운 세대의 등장에 신바람이 났다”던 박씨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혼자 꾸는 꿈은 당연히 이루어지지 않고 날짜만 끌자 슬슬 지치기 시작했다”고 말한다.
박씨는 “대통령 당선되자마자 뽀르르 미국 먼저 달려간 것부터 시작해서 도무지 마음에 안 드는 것 천지였기 때문에 촛불시위도 속으로 박수쳐가며 지켜볼 수 있었다”면서도 “우리가 투표해서 뽑은 대통령인데 그의 졸렬한 정치가 아무리 못 참아 줄 수준이었다고 해도 그만큼 의사표시를 했으면 나머지는 국회에 맡겨야 되지 않을까”라고 썼다.
또, “보수세력들이 배후의 불순세력 운운하는 소리를 들으면 지금이 어느 때라고 저 낡은 수법을 또 써먹나, 울컥 혐오스럽다가도 결국은 이 정부를 흔드는 시위대에 싫증을 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정부 수립 60주년이 됐지만, 선거로 대통령을 뽑게 된 역사는 얼마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민의로 정권교체라는 신나는 일을 해본 것도 그 후의 일이다. 이 정도의 민주주의라도 정착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젊은이가 순결한 피를 흘리고 민주투사를 양산했는지 어찌 잊을까. 이 제도를 지키고 싶고, 흔들고 싶으면 흔들되 아직 어린 나무이니 뿌리까지 흔들진 말았으면 싶은 것이다.”
그는 촛불시위에 대한 견해차로 딸들과 격론을 벌이기도 했고 평소 진보적 견해를 같이해 온 것으로 믿어온 후배에게 ‘별수 없는 보수꼴통’ 소리를 듣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박씨는 “나에게 6·25는 아직도 지혈이 안 된 상처지만 그 다음 세대에게는 6·25를 아무리 설명을 해봤댔자 발굴한 유해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며 “그 골은 엄청나게 깊지만 다행히 우리는 사라져가는 세대”라고 쓸쓸하게 세대 차이를 인정했다.
심재천 기자 jayshi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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