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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석정·노기식 엮음/소명출판/2만원 |
삼국시대 이래 만주는 인근 국가 간에 치열한 투쟁이 벌어진 곳이다. 고구려와 수·당의 충돌, 발해와 당의 대립을 비롯해 거란, 여진 등 여러 국가와 민족의 흥망성쇠가 잇따랐다. 19세기의 만주는 베이징을 수중에 넣으려는 중국 군벌 장쭈어린의 근거지이자 러시아·미국·일본 등 국제적 패권경쟁의 대상, 즉 ‘갈등의 요람’이었다. 20세기 들어 만주는 일본 관동군이 세운 괴뢰 만주국이 자리하며 강제노동과 극악무도한 생체실험을 하던 군국주의의 실험실이었고, 우리 민족엔 항일독립운동의 전초기지였다. ‘위(僞)만주국’으로 부르는 중국인들에겐 역설적으로 만주는 아예 존재하지 말아야 할 악몽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작금의 동서양 학계에서 만주는 국민국가적 구획하의 한국·중국·일본사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변방이었다.
이처럼 침묵하고 있는 땅, 망각의 땅 만주가 꿈틀대고 있다. 중국이 만주를 자국 역사에 포함하려고 동북공정을 강행하고 있고, 한국인들의 여행과 투자, 탈북자들의 흡인, 유엔 지원 하의 북한·중국·러시아 3국에 의한 두만강 개발이 진행 중이다. 또한 시베리아철도와 한반도종단철도를 통한 만주의 연결, 북한-중국 국경지대의 경제특구 등도 구상되고 있다.
‘만주, 동아시아 융합의 공간’은 만주를 둘러싼 한국과 중국의 민족주의 갈등 속에서 어느 한쪽을 편드는 국책성 보고서가 아닌, 16세기 이래 만주의 역사적 혼합성, 다양성과 관련된 논구들의 모음이다. 이런 역사적 이해를 바탕으로 책엔 21세기 개방의 시대에 민족주의적 대립이 아닌 국제적 협력을 통해 만주의 발전을 제시하는 묵시적 희망이 담겨 있다.
책에는 ‘동북공정이란 무엇인가’(윤휘탁 한경대 교수), ‘분단과 만주의 기억’(신주백 국민대 연구교수), ‘중국 조선족의 현황’(장세윤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위원) 등 18편의 논문이 담겨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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