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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거일 칼럼]예술과 현실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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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7-13 19:17:50 수정 : 2008-07-13 19: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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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한적 상황과 마주치면 우리 마음은 문득 마비된다. 재해나 인종청소로 죽은 몇십만 목숨은 그저 추상적 숫자로 입력된다. 사람 마음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보들을 다루도록 진화했으므로, 우리에겐 거대한 재앙을 전체적으로 파악할 능력이 없다.

우리는 북한의 현실을 잘 안다. 극단적 압제, 벗어날 길 없는 가난, 목숨 걸고 탈출하는 사람들의 비참함, 군사적 위협을 극대화한 핵무기―이 모든 것들을 누가 모르랴? 그런 극한적 상황이 휴전선 너머에 실재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크고 작은 소식들도 날마다 들린다. 그러나 북한의 현실이 우리 마음에 새롭게 인식되는 경우는 드물다. 몇백만명이 굶어 죽었다는 얘기가 들리면 우리 마음은 과부하가 걸린 회로처럼 닫힌다.

마음을 막아서는 거대한 현실에서 개인의 삶에 들어온 부분만을 보여줌으로써 예술작품은 우리가 현실을 받아들이도록 돕는다. 예술 속에서 추상적 현실이 구체적 모습을 갖추는 것이다.

북한에서 탈출한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로싱’에서 우리는 이 점을 새삼 깨닫는다. 젊었을 때 유명한 축구선수였고 지금은 탄광의 광부인 주인공은 암담한 현실에서 비교적 고통을 받지 않고 ’정상적’ 삶을 꾸려간다. 그러나 임신한 아내가 폐결핵을 앓게 되자 그 정상적 삶이 얼마나 여린가 이내 드러난다. 북한과 같은 비정상적 사회에선 정상적 삶이 있을 수 없다. 사회적 차원의 압제와 가난은 개인적 차원의 작은 불운도 삶을 깨뜨리는 재앙으로 증폭시킨다. 그래서 아내의 병을 치료할 약을 찾아 두만강을 넘은 주인공은 끝내 아내와 자식을 잃는다.

한 가족의 불행이라는 틈으로 보이므로, 북한 체제의 사악함은 부분적으로만 드러난다. 주인공의 어린 아들이 붙잡혀 들어간 수용소의 모습이 잠깐 나오지만, 그것은 사람이기를 포기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수용소의 현실과는 거리가 있다. 그래도 북한 체제의 사악함은 우리를 이내 압도해서 우리는 자신에게 묻게 된다: “저런 사악함에 대해 이 영화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물론 ‘크로싱’이나 ‘요덕 스토리’와 같은 작품들이 북한을 탈출한 사람들을 직접 돕는 데엔 한계가 있다. 그것들이 북한 주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은 더욱 적다.

그래서 우리는 프랑스 평론가 장 리카르두의 얘기를 어쩔 수 없이 떠올리게 된다: “문학은 배고픈 아이에게 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에 배고픈 아이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추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술은 이 세상의 사악함을 직접 줄일 힘은 거의 없다. 대신 사람들이 외면하는 사악함을 우리가 보도록 해서 그것을 추문으로 만든다. 사악함이 줄어들려면 먼저 그것이 추문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북한 체제의 사악함은 추문이라 부를 수 없을 만큼 깊고 크다. 그 생생한 지옥을 어떻게 추문이라 부를 수 있겠는가.

‘크로싱’이 추문으로 만드는 것은 우리의 모습이다. 북한 체제의 사악함을 잘 알면서도 태연히 용인하는 우리의 도덕적 타락이다. 뜻밖으로 절제의 미덕을 지닌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는 자신이 가까이 존재해온 사악함과 비참함을 너무 가볍게 외면해왔음을 부끄러운 마음으로 깨닫는다.

그렇다, 이 영화는 우리의 모습을 추문으로 만든다. 북한 정권의 압제에 대한 우리의 무력함을, 북한 정권을 추종하는 세력이 진실을 감추도록 허용한 우리의 비겁함을, 북한에 남은 국군 포로들과 납북자들을 찾아서 데려올 마음조차 지니지 못한 우리의 도덕적 게으름을 추문으로 만든다. 북한의 핵무기의 위험을 줄이려는 국제적 노력이 진행되는 지금, 그것은 무엇보다도 북한 핵무기의 거대한 위협을 느끼지 못하는 시민들의 어리석음과 실질적 당사자의 역할을 포기한 정부의 무기력을 추문으로 만든다.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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