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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검게 타버린 그리움'이…

입력 : 2008-06-20 02:48:52 수정 : 2008-06-20 02:48: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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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일주도로 자랑하는 흑산도
◇상라봉으로 올라오는 열두 굽이 고갯길. 멀리 예리항이 보인다.
‘흑산도 하면 생각나는 것은?’

알싸한 맛의 홍어 혹은 가수 이미자가 부른 가요 ‘흑산도 아가씨’, 아니면 천하절경으로 소문난 홍도로 갈 때 잠깐 들르는 경유지. 여행을 많이 다녀 보지 않은 사람에게 물으면 이 정도 대답이 나올 것 같다. 흑산도는 몇해 전까지만 해도 여행 목적지로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일주도로가 정비되면서 그 안에 감춰진 비경이 외부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주변에 딸린 새끼 섬들의 풍광도 홍도에 버금간다. 이제 흑산도는 그 자체만으로도 우리 땅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섬 여행지가 되어 가고 있다.

# 상라봉 열두 굽이 고갯길

주변 바다 물빛이 푸르다 못해 검어서 흑산도라 불리는 이 섬이 여행지로는 최근에야 빛을 보게 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지형이 워낙 험해 길이 제대로 연결되지 못했다. 또 섬이 워낙 크다 보니 유람선으로 돌아보기도 어려웠다. 총 연장 28㎞에 달하는 일주도로가 연결되면서 흑산도는 전국의 수많은 섬 중에서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떠올랐다. 아직 비포장 구간이 남아 있긴 하지만, 4륜구동차량으로는 어렵지 않게 다닐 수 있다. 

예리항을 출발한 관광택시가 시계 반대 방향으로 천천히 섬 일주를 시작한다. 배낭기미 해수욕장을 통과한 택시는 가파른 산길을 올라간다. 바로 흑산도가 여행지로서 성가를 드높이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상라봉 열두 굽이 고갯길이다. 상라봉 전망대에 서면 굽이굽이 고갯길이 발아래 펼쳐지고, 그 뒤로는 예리항이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대장도와 소장도, 조금 멀리는 홍도, 심지어 80㎞나 떨어진 가거도까지 시야에 들어온다.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올 수밖에 없는 장관이다. 이 장면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으로 꼽은 여행자가 줄을 서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상라봉 전망대 한쪽에는 ‘흑산도 아가씨 노래비’가 서 있다. 지금도 예리항 부두의 확성기는 하루 종일 ‘흑산도 아가씨’를 구성지게 읊어대고 있다. 평소 ‘뽕짝’을 즐겨 듣지 않는 사람이라도 상라봉 아래 절경을 보며 ‘아득한 육지를 바라보다 검게 타버린…’이라는 노랫말을 듣노라면 그 애절한 가락에 절로 마음을 싣게 된다.
◇사리마을 앞바다. 흑산도의 한적한 어촌 풍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다.

# 사리마을 포구와 한반도 바위

아름다운 해안을 벗삼아 남쪽으로 내려가면 다양한 사연과 전설을 품은 비경이 곳곳에 숨어 있다.

비리마을 앞바다에서 만나는 ‘한반도 지도 바위’. 바다 위에 솟은 기암괴석 가운데의 구멍이 한반도 모양과 너무도 흡사하다. 비리와 홍합치 사이에는 ‘하늘도로’가 자리하고 있다. 교각이 없어 도로가 하늘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소사리 마을 앞바다의 ‘구문여’는 거센 파도가 칠 때 구멍 사이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장면이 장관이다. 사리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사리(모래미)마을 포구 모습도 흑산도에서 손꼽히는 절경. 흑산도에서 으뜸이라는 쪽빛 바다와 아늑한 포구, 그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작은 조각배들…. 포구의 풍광만으로 치면 우리 땅에서 이곳을 능가하는 곳을 찾기는 쉽지 않을 듯싶다.

# 정약전과 최익현 선생의 자취

흑산도에서는 정약전, 최익현 선생의 자취를 좇아보는 것도 좋은 여행 테마가 된다. 다산 정약용의 둘째형인 정약전은 천주교 포교 활동을 했다는 이유로 신유사옥에 연루돼 1801년 흑산도에 유배되었다. 정약전은 흑산도에서 15년간 유배생활을 하며 일종의 어류학 총서인 ‘현산어보’(자산어보)를 펴낸다. 정약전이 처음 정착한 곳이 사리마을. 정약전은 이곳에서 사촌서당을 지어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로 유배생활을 시작했다. 조선시대에는 돛단배로 육지에서 흑산도로 오려면 보름 이상이 걸렸다고 한다. 이 절해고도에서 정약전은 얼마나 적적했을까. 사촌서당 마당에 서면 저 멀리 펼쳐지는 서해바다가 정약전의 쓰라린 가슴을 위무했으리라.

흑산도는 면암 최익현 선생이 유배당한 곳이기도 하다. 최익현은 1876년 병자수호조약이 체결되자 궐문 앞에 도끼를 메고 ‘조약을 체결하려거든 이 도끼로 내 목을 먼저 치라’고 상소를 올렸다가 이곳으로 쫓겨 왔다. 사리마을에서 조금 북쪽에 자리한 천촌(여티미)마을에는 면암의 뜻을 기리는 ‘면암 최익현 선생 유허비’가 서 있다.

일주를 마친 관광택시는 다시 예리항으로 향하고 있다. 찬찬히 보아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았는데, 왜 이리 시간이 빨리 가는 걸까. 배 시간에 쫓긴 택시가 속도를 내면 낼수록 내 마음속의 아쉬움도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흑산도=글·사진 박창억 기자 daniel@segye.com

≫여행정보

전남 목포에서 흑산도까지 쾌속선으로 2시간 정도 걸린다. 흑산도에서는 섬 안의 4륜구동 관광택시로 돌아보는 육로관광을 권한다. 육지에서 승용차를 실어올 수 있지만 요금이 워낙 비싸 관광택시를 이용하는 게 경제적이다. 섬 일주에 2시간 정도가 소요되며 4인 기준 6만원선. 가이드를 겸한 운전사의 입담이 구수하다. 죽항리의 서해민박·남일수산(061-275-9189)에서는 식사와 민박이 가능하며, 홍어와 전복을 전국에 택배로 보내준다. 한국드림관광(02-849-9013)은 흑산도·홍도 KTX여행 상품을 판매한다. 주말 2인 1실 기준으로 1박2일은 20만원, 2박3일은 24만원. 흑산면사무소(061-275-9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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