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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 인권 리포트]멍에 씌우는 진단서 F코드…인권 눈감은 당국은 F학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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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6-19 19:07:15 수정 : 2008-06-19 19: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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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장애인과 그 가족들은 치료 및 재활 과정에서 부딪치는 갖가지 법과 시스템 때문에 깊은 상처를 받곤 한다. 정신질환 증상의 경중이나 종류를 고려하지 않고 일률적으로 규정된 ‘차별적인 조항’이 곳곳에 널려 있는 탓이다.

◆장애인이 설 자리 막는 ‘걸림돌’=정신장애인들은 조리사, 이발사, 미용사, 위생사, 건설장비기사, 의료 보조 인력, 모터보트 운전, 약사, 한의사 등 20개 이상 분야의 자격증을 딸 수 없다. 법에 자격 제한이 규정돼 일할 권리가 침해당하고 있는 것이다. 염형국 변호사는 “가벼운 정신질환이면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지만 편견 때문에 자격이 제한된 조리사, 이·미용사, 위생사 등의 법령은 전문의들의 의견을 수렴해 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신분열증·마비성 치매 기타 정신질환에 걸린 자는 근로를 금지해야 한다’는 산업안전보건법 시행규칙도 인권침해 소지가 크다. ‘기타 정신질환’의 범위가 모호하게 규정돼 일상 생활이 가능한 질환자의 일할 권리를 원천봉쇄할 우려가 있다. 최경숙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은 “이런 규정은 정신장애인의 인권을 침해할 소지가 크고 더구나 해고 사유로 악용될 수 있는 만큼 개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차별과 편견의 대명사, ‘F코드’=정신과 진료를 받으면 국제질병분류 기호에 따라 F로 시작되는 병명이 진단서에 기록된다. 보험회사는 F코드를 가입 제한 대상으로 삼고, 발병 전에 가입한 고객이 정신질환을 앓아도 보험금을 주지 않는다. 정신장애인 가족들의 스트레스와 경제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주범’이다.

분열병을 앓는 딸을 키우는 A(50)씨는 “입원비가 300만원 넘게 나와 보험사에 청구했지만 거절당한 뒤 무척 억울했다”며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처사”라고 말했다.

우울증, 불면증, 불안장애 등 가벼운 정신질환도 F코드로 분류되는 탓에 정신과 치료를 기피하게 만드는 요인이다. 평생 ‘낙인’이 찍혀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앞서기 때문이다.

환자의 동의를 받지 않는 진료기록 유출은 불법이다. 하지만 보험회사들은 계약전에 여러 경로를 통해 진료기록을 ‘은밀하게’ 입수하고 있다. 이런 현실 탓에 어린 학생을 둔 부모들은 2∼3배에 달하는 치료비를 감수하면서까지 비보험 처리를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학병원의 경우 통상 일주일 외래 치료비가 진단 및 약값을 포함해 4만5000원 정도지만 비보험 처리하면 10만원 이상을 부담해야 한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구조적 요인에 대해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보험사의 행태를 알고 있지만 고발이나 진정이 없어 그저 지켜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 4일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정신보건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 공청회'에서 보건복지가족부 관계자가 정신장애인 정책 추진방향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효율적 입·퇴원 시스템 구축이 우선=지난 3월 개정된 정신보건법은 정신장애인 강제입원 남발을 막기 위해 입원 동의 가족을 1명에서 2명으로 늘렸다. 이에 대해 인권 보장도, 현실성도 떨어지는 ‘어정쩡한 조치’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마음의 집’ 최동표 원장은 “가족들의 이해관계가 같다고 보면 동의하는 숫자를 늘렸다고 강제입원 절차가 엄격해졌다고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가족 한 명이 장애인을 돌보는 집이 갈수록 늘어 한 명의 동의도 받기 어려운데 두 명으로 늘린 것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달 22일부터 시행되는 인신보호법의 실효성도 논란거리다. 입원한 정신장애인 대부분이 경제적으로 어려워 변호인의 도움을 받는 것이 쉽지 않은 만큼 구제청구 법정 대리인에 시민단체 등 제3자가 포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림대 춘천성심병원 정신과 이상규 교수는 “결국 어떤 절차를 강화하는 것보다 환자가 악화되면 빨리 입원시키고 호전되면 속히 퇴원시키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특별기획취재팀=채희창(팀장)·이상혁·김태훈·양원보·김창길 기자

tams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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