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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e정보 유출 창과 방패의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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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6-02 20:46:56 수정 : 2008-06-02 20: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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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호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경제학
얼마 전 통신회사들의 고객정보 유출문제로 온 나라가 한바탕 떠들썩한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국내의 대표적인 오픈마켓이 중국발 해킹에 당해 1000만명 이상의 개인정보가 유출되는 대형사고까지 터져 ‘혹시 내 정보는 괜찮을까’ 하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정보를 보낼 때 안전하게 보내고, 외부의 침투로부터 내부의 정보를 보호하는 ‘정보보안’은 비단 요즘만의 문제는 아닌 듯하다. 인류 역사 이래로 정보의 유출과 획득은 간혹 국가의 흥망과 전쟁의 승패로 이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인터넷의 발달로 전자상거래와 온라인 금융거래가 일반화하면서 많은 중요 정보가 통신망을 통해 흐르고 정보를 이용한 범죄도 빈발해지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정보보안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것은 기밀을 유지하기 위한 암호라고 할 수 있겠다.

어렸을 때 읽은 셜록홈즈가 등장하는 탐정소설이나 포의 추리소설을 보면 여러 가지 암호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처음 보기에는 해독이 불가능할 것 같은데 주인공들이 무언가 실마리를 찾아 풀어나가는 과정을 보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암호도 믿을 게 못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제 암호 속의 과학을 알아보기 위해 두 사람이 인터넷상에서 정보를 교환하기 위해 메시지를 주고받는 상황을 가정해 보자. 인터넷이란 말 그대로 네트워크를 수없이 연결해 놓은 것이므로, 정보를 그냥 보내게 되면 중간에서 다른 사람이 그 정보를 볼 수도 있다. 이런 경우에 대비해 추리소설에서처럼 일정한 약속으로 암호화해 두 사람만 아는 방식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있다. 단 두 사람만의 통신이라면 암호를 직접 가서 알려주든지 하면 되겠지만, 인터넷상의 거래에서는 나에게 메시지를 보내는 사람도 불특정 다수이고 내가 메시지를 보내는 대상 역시 불특정 다수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경우 어떻게 해야 할까.

이에 대한 획기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된 방법이 바로 두 가지 열쇠를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두 개의 문과 각각의 열쇠를 가진 철제상자가 있다고 하자. 하나의 열쇠는 문을 잠그는 열쇠인데, 이 열쇠로 열리는 문을 통해서는 메시지를 넣기만 할 수 있다. 또 다른 하나의 열쇠는 상자 안에 있는 메시지를 꺼낼 수만 있다. 이렇게 제작된 열쇠 중 메시지를 넣는 데 사용된 열쇠는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공개한다. 그러면 나에게 정보를 보내고 싶은 사람은 그 열쇠를 가지고 나에게 메시지를 보낼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공개되지 않은 열쇠를 가지고 있는 나만이 그 상자 안에 있는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인터넷상에서의 열쇠는 바로 숫자들이다. 예를 들어 21을 공개해 누구나 메시지를 보낼 수 있도록 하고, 21을 구성하는 인수(因數)인 3 또는 7을 아는 사람만이 메시지를 볼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기밀을 지키기 위한 열쇠를 아예 공개하자는 아이디어는 간단하지만 대단히 획기적인 것으로 그 용도가 대단히 넓다. 우리가 일상의 이메일 등에서 사용하는 아이디와 패스워드가 이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 경우 걱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혹시 공개된 열쇠를 통해서 개인 열쇠를 유추할 수 있지 않을까. 요즈음에는 이를 막기 위해서 300자리 이상의 숫자를 열쇠로 사용하며, 이를 풀려면 현재 가장 성능이 우수한 컴퓨터로도 수백년이 넘게 걸린다고 하니 ‘당분간은’ 안심해도 좋을 듯하다.

그럼에도 정말 안심할 수 있는 걸까. 지금도 컴퓨터는 계속 발전하고 있고, 수학도 나날이 발전하고 있는 걸 보면 반드시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어떤 방패도 뚫을 수 있는 창과 어떤 창도 막을 수 있는 방패의 모순(矛盾) 속에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명호 연세대 정보대학원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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