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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도소는 인생학교, 그곳에서 참자유 얻었다”

입력 : 2008-05-30 23:11:20 수정 : 2008-05-30 23: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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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한 사회의 문화를 알려면 감옥 안을 살펴보라”는 말처럼 컬린 토머스는 수많은 빛과 미덕, 인간애, 품위, 고통을 나누는 모습, 심지어 평화까지 발견한 한국 교도소에서 인생을 배우고 어른이 되었다.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컬린 토머스 지음/김소정 옮김/북스코프/1만2500원

컬린 토머스 지음/김소정 옮김/북스코프/1만2500원
“언제나 실패할 리 없다고 믿었고, 반드시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한국이 내 생각을 바꾸었다. 작지만 완강한 나라 대한민국은 나를 다른 길로 데려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보여주었다. 한국이 아니었다면 절대 알지 못했을 가혹하고도 아주 중요한 이야기를 말이다.”

‘미국 청년 토머스의 대한민국 표류기’가 부제인 ‘나는 한국에서 어른이 되었다’를 처음 접할 땐 단순히 한 외국인 유학생의 한국 체험담이려니 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 넘기면서 책에 빠져들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모험을 동경했던 토머스(38)는 변화를 꿈꾸며 ‘한국’을 택했다.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양의 작은 나라에 왔지만 이내 낯선 문화와 환경, 이십대 초반의 불안은 그를 옥죄기 시작했다. 장난처럼 가볍게 생각하고 해시시를 한국으로 들여오려던 그는 마약 밀수범으로 체포돼 3년 6개월 동안 감옥 생활을 하게 된다. 자신의 선택에 대한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야 했던 토머스의 처절한 고백은 인생 밑바닥을 체험해보지 않고선 도저히 나올 수 없는 깊이와 울림, 그리고 깨달음과 달관이 녹아 있다.

“대다수 외국인들처럼 나 역시 한국에서는 무엇이든 해도 되지만 그에 대한 책임을 질 필요는 없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말도 거의 통하지 않는 이방인이니 한국인들의 법을 나에게 적용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말 위험하고 오만한 생각이었지만 그때 나는 내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을 만큼 현명하지 않았다.”

그러나 감옥이 토머스를 변화시켰다. 서울구치소에 이어 의정부교도소, 대전교도소를 전전하며 복역한 토머스는 스스로 ‘학교’라고 칭한 그곳에서 영원히 잊지 못할 인생체험을 한다.

“교도소에서 보낸 3년 반 동안 나는 그 밖의 제 인생에서 배운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들을 배웠다. 감옥에서의 경험들이 나에게 남긴 여러 가르침 중에서도 대한민국의 역사와 문화 속에 깊이 담금질되었던 것이 가장 의미 있었다. 손님으로서는 경험하기 힘든 독특한 체험이었다. 한국은 내게 영원히 잊지 못할 가르침을 준 학교였다.”

물론 토머스가 처음부터 깨달은 건 아니다. 그도 희로애락할 줄 아는 평범한 인간이다.

“감금됐다는 충격에서 벗어나면 아주 추악하고 본질적인 분노와 공포, 자기혐오가 고개를 든다. 그저 단순한 분노와 절망이 아니었다. 그것은 투옥된 사람들만이 느끼는 감정이었다.”

“내가 만나는 세상은 자비와 관용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세상은 나에게 관심조차 없었다. 그 무렵 나를 짓누르고 있던 비참한 심정은 한 젊은이가 품고 있던 작은 바위를 산산조각내버렸다.”

“나보다 훨씬 가혹한 벌을 받고 있는 재소자도 있는데, 밤마다 눈물을 흘리면서 물건을 집어던지고 욕을 퍼붓다가 자신의 초라함과 절망으로부터 도망치기 위해 이불 속으로 숨어드는 사람이 정말 나밖에 없는 걸까?”

감옥에서의 사색은 점점 깊이를 더해갔다. 호기심도 발동시켰다.

“살인자건 해적, 혹은 정신병자가 됐건 간에 인간의 모습을 자세히 알고 싶었다. 내 여정은 당초에 계획했던 대로 풀리지 않고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왔지만 생각했던 길이 아니었더라도 훨씬 더 분명하게 내가 찾던 것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한국에서 보낸 시간이 결코 끔찍하지 않았다.”

비로소 자각의 눈을 뜨기 시작했다.

“교도소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가 1000가지도 넘는다는 걸 알았다. 바깥세상과 비교하는 동안에는 감옥에 억눌려 있기만 했다. 그러나 눈가리개를 한 말처럼 내 옆이 아니라 앞에 펼쳐진 삶에 집중하고, 외부가 아닌 교도소에 집중하게 되면서 더 이상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는 생각으로 괴롭진 않았다. 그런 마음가짐이 바로 자유였다.”

깨달음을 얻자 그는 달라졌다. 모든 게 거꾸로였다. 주변은 온통 스승뿐이고, 그를 가둔 한국은 인생학교였다.

교도소는 그에게 자유를 빼앗았고 생활 환경은 더없이 열악했지만 그 안에서 토머스는 참자유를 획득했다. 네모난 상자 같은 그 방은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는 공간’이 되었고, 함께 복역한 같은 외국인들과의 만남, 교도소 안 피혁 공장에서 일하면서 한국인 재소자들과 나눈 우정을 통해 교도소는 그를 한 뼘 성장하게 해준 곳이자 한국을 사랑하게 한 곳으로 탈바꿈했다.

“이리저리 강하게 흔들리는 동안 나는 감옥이라는 곳이 공포나 희망을 요구하는 곳이 아니라, 두 감정에서 모두 떨어져 한국 불교에서 추구하는 가혹하고도 엄격한 정직함을 가져야 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 조용했던 화요일에 우리는 운동하러 나가지 못했고, 교도관들은 열명을 처형했으며, 미궁에서 몇 미터 떨어진 구치소 어딘가에서 열명의 목이 매달렸다. 형제들을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인 재소자들은 자신들이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 즉 ‘침묵’으로 조의를 표했다. 그때 처음으로 한국인 재소자들도 내 형제라는 생각이 들었고, 재소자들에게도 고귀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우리들은 모두 필사적으로 감옥에서 벗어나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그 안에서는 함께 우정을 나누었고 서로 격려했으며 같은 목마름을 품고 있는 사람들로서 서로를 보듬었다.”

가혹하게 한국을 경험한 그는 “한국은 내게 세상의 끝을 보여주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일어설 힘도 함께 주었다”며 끝내 “한국과 한국 사람들을 사랑한다”며 글을 맺었다.

2006년 영국, 2007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언론의 집중 주목을 받았으며 키리야마상이 제정한 ‘2008년 주목할 만한 책’과 월드험닷컴 ‘2007년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한편 토머스는 현재 뉴욕에 살면서 전기 작가로 활약하고 있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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