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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에서 ‘육상건조공법’을 통해 선박을 만드는 모습. |
지난 1972년 현대중공업이 미포만에 조선소를 짓기 시작하면서 걸음마를 뗀 한국의 조선산업. 시작은 미약했다. 하지만 40년도 안 돼 한국 조선업은 세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때 세계시장의 절반을 ‘싹쓸이’했던 일본은 79년부터 두 차례의 오일쇼크 등을 거치면서 조선소 규모가 대폭 줄었고, 공급과잉 등을 우려해 신규 설비투자도 게을리하면서 쇠락의 길을 걸었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까지 외형을 늘려가는 동시에 첨단공법 등을 속속 도입해 세계 무대에 화려하게 등장했다. 한국 조선업의 세계 1위 비결과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는 조선업체들의 노력을 살펴본다
세계 최초의 ‘육상건조공법’(현대중공업), 물위에서 배를 건조하는 ‘플로팅도크공법’(삼성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조선강국 코리아’라는 명성은 그냥 얻어진게 아니다. 우리 조선기업들은 경쟁국들이 생각하지 못한 선박 건조기술을 개발하는 등 독보적인 기술력을 과시하고 있다.
5대양을 주름잡고 있는 선박 10척 중 4척은 한국이 만든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전 세계 선박 수주량의 39.8%인 3280만CGT를 수주했다.
◆세계시장이 좁다=한국이 조선업 진출 40년도 안돼 세계 1위를 차지한 비결은 무엇일까.
“한국 조선산업은 창의력이 넘치고 아이디어가 번득이며 과감한 공법으로 승부한다.”
한국 조선산업을 보는 외국인들의 반응이다.
한국 조선은 질과 양에서 세계 최고지만, 여기서 그치지 않고 생산성에서도 진보를 거듭하고 있다.
IT 분야가 한국 신경제의 상징이라면 조선업은 ‘중후장대’ 업종에서 세계 초일류 브랜드로 각인되고 있다. 과거처럼 저렴한 인건비, 출혈 수주를 통해 거둔 성과가 아니라는 점이 무엇보다 값지다. 철강산업 등 산업간 협력을 통해 시너지를 유발하고, 설계와 선박 건조 공법, 마케팅 등 전 분야에 걸쳐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국내 조선소는 세계 10대 조선소 가운데 상위 6곳에 이름을 올려놓았다. 현대중공업,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STX조선 등이 주인공이다.
영국 해운·조선 조사기관인 로이드의 통계가 그와 같은 사실을 입증한다. 한국은 지난해 3280만CGT를 수주, 세계 제1위를 기록했다. CGT는 유조선, 컨테이너선 등 다양한 선종의 용량을 일반 화물선 기준으로 보정한 총 톤수다. 2716만CGT를 기록한 중국과 969만CGT에 머문 일본을 큰 차이로 따돌렸다.
건조능력에서도 압도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다. 지난해 1119만CGT를 건조, 세계 32.4%(1위)를 차지했다.
수주 잔량에서도 한국은 2위 중국을 크게 앞섰다. 지난해 기준 세계 수주 잔량 1억777만CGT 가운데 한국은 6338만CGT로 35.7%를 차지했다.
중국이 ‘한국 타도’를 주장하며 2015년 세계 1위 등극을 외치고 있지만 LNG선, 초대형 유조선 등 고부가가치선 건조능력에서 한국이 최소한 5년 이상 앞서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한국 조선업의 ‘욱일승천’은 1990년대 과감한 투자가 주효했다. 93년 말 정부는 한시적 조선산업 합리화의 일환으로 신·증설 억제조치를 해제했다. 이때 업체들이 과감히 설비 증설에 몰두했다.
‘설비 과잉 논란’이 불거졌을 때도 도크 시설을 확대했다. 현대중공업 제8·9호 도크나,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의 도크 설비 확장도 90년대 중반부터 이뤄졌다.

◆한국 조선의 강점은=한국 조선업의 힘은 우수한 기술과 인력, 현대적 설비 등 ‘3박자’가 고루 갖춰진 데서 나온다.
국내 조선업체는 도크없이 땅 위나 물 위, 심지어 물속에서도 배를 만든다. 도크는 선박을 최종 조립하는 일종의 대형 웅덩이로 배가 완성되면 도크 문을 열어 바닷물이 들어와 배를 띄운다. 도크공법은 조선업계의 ‘불문율’인데 국내 업계가 이를 여지없이 깨버렸다.
현대중공업은 땅 위에서 배를 짓는 ‘육상건조공법’을 세계 최초로 성공시켰다. 대형 선박 육상건조공법의 가장 힘든 과제는 건조된 선박을 바다로 끌고 가는 과정이다. 무게가 2만t이나 되는 거대한 구조물을 바닥과 마찰 없이 옮기기 위해 배 밑에 있는 레일에서 고압의 공기를 넣어 배를 부양·운반한다.
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은 물 위에 떠있는 플로팅 도크(floating dock) 공법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한진중공업은 바다 속 용접 기술인 ‘댐 공법’으로 로 조선업계를 감탄케 했다. 도크 길이가 부족하자 ‘댐’이라는 구조물을 바다에 설치한 뒤 물을 퍼내고 그 안에서 작업을 하는 방식이다.
홈네트워크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자동항법장치 기술에서도 한국은 세계 선두권이다.
이론적으로는 사람 한 명 타지 않고서도 대양을 횡단하는 것이 가능하다. “공해상에서 해적떼만 없다면 승무원을 태울 필요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IT는 생산·관리 시스템에서도 성과를 내면서 가장 기초적인 선박 절단도 IT 기술로 자동화한 지 오래다. 선박 설계 시 컴퓨터 시뮬레이션 기술도 한국이 선도하고 있다.
1970년대부터 공학 계열 최고의 인재들이 조선소에 몰렸다. 각 대학 조선학과에는 우수한 학생들이 입학했고 향후 이들은 연구소와 현장에서 기초기술과 응용기술 개발에 몰두했다.
후판(선박용 철판) 공급이 그 어느 나라보다도 원활한 것도 강점이다. 세계 초일류 한국 철강산업이 조선공업의 모태가 됐다는 얘기다. 국내 조선업계가 필요로 하는 후판은 지난해 732만t. 이 가운데 60%가량을 포스코와 동국제강 등이 공급했다.
이들이 제공하는 후판은 품질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국산 디젤엔진의 품질도 월등하다. 한국의 디젤엔진 생산규모는 세계 1위다. 후판과 엔진 공급, 각종 기자재 보급이 톱니바퀴처럼 정확히 맞아 돌아가는 것이 한국 조선산업의 힘이다.
김기동 기자 kidong@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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