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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BS 드라마 '온에어'. SBC라는 가공의 방송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
앞으로 생겨날 방송사 이름이 아니다. 기자, 아나운서, PD 등 방송 종사자들을 주인공으로 삼은 TV 드라마에 꼭 등장하는 가공의 방송사 명칭이다. 지상파 3사 영문 이니셜(KBS·MBC·SBS)을 조금씩 고쳐 만든 점이 이채롭다.
지난 2000년 MBC에서 방송된 ‘이브의 모든 것’은 아나운서의 세계를 그렸다. 채림과 김소연, 김정은 등이 미모의 아나운서 역할을 맡아 열연을 펼쳤는데 극중 이들의 직장 이름은 MBS였다. MBC에서 끝의 ‘C’만 ‘S’로 바꿨다. 이 드라마는 장동건, 한재석 등 미남 배우들의 가세로 40% 이상의 높은 시청률을 올리며 아나운서직 홍보에 톡톡히 기여했다.
지난해 KBS ‘인순이는 예쁘다’의 경우 방송을 주제로 한 드라마는 아니었으나 핵심 주인공 직업이 문화부 기자(김민준), 아나운서(이인혜)로 설정돼 방송국이 화면에 자주 나왔다. 이를 위해 KBS에서 끝의 ‘S’만 ‘C’로 살짝 바꾼 KBC란 가공의 방송국을 등장시켰다. 같은 시간대 MBC ‘태왕사신기’에 밀려 시청률은 낮았지만 ‘착한 드라마’란 평을 들었다.
요즘 수목 드라마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는 SBS ‘온에어’는 기자나 아나운서 대신 PD, 작가, 탤런트, 스타 매니저의 세계를 다룬다. 극중 드라마 PD로 나오는 박용하의 소속사는 SBC. SBS에서 끝의 ‘S’만 ‘C’로 고쳤다. 방송사 직원은 아니지만 작가(송윤아), 배우(김하늘), 기획사 관계자(이범수)도 모두 SBC라는 가공의 방송국과 손잡고 일한다.
재미있는 것은 가상의 방송사 이름을 지을 때 앞은 그대로 두고 뒤만 바꾼다는 점이다. (KBS → KBC, MBC → MBS, SBS → SBC) 맨 앞의 ‘K’, ‘M’, ‘S’에 손을 대지 않은 이유는 브랜드 효과에 대한 고려로 풀이된다. 요즘 KBS를 줄여 ‘K본부’, MBC를 ‘M본부’라고 부르는 점에서 알 수 있듯 맨 앞 글자는 통상 방송사의 정체성과 직결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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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스포트라이트'. GBS라는 가공의 방송국이 배경으로 등장한다. |
물론 예외도 있다. 곧 전파를 타는 MBC 새 수목드라마 ‘스포트라이트’는 사회부 기자들의 일과 사랑을 다루는데, 이를 위해 제작진이 설정한 가공의 방송사 이름은 GBS다. 지진희가 GBS 보도국 사회부의 캡(경찰팀장)이고 손예진은 그의 지휘를 받는 일선 경찰서 출입기자다. MBC와 철자가 2개나 달라 유사점을 찾기 힘든 GBS를 차용한 점이 눈에 띈다.
올해 11월 KBS에서 방영되는 ‘그들이 사는 세상’은 PD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표민수 PD와 노희경 작가의 의기투합으로 벌써부터 화제가 되는 이 작품 속 방송국 이름은 뭐가 될지 궁금하다. 일단은 그간 KBS 드라마에서 단골로 쓰인 KBC가 당첨될 공산이 커 보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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