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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는 17일 막을 올릴 뮤지컬 ‘컴퍼니’에서 미국 뉴욕의 30대 독신 남성 바비 역을 맡은 고영빈. 그는 “작품을 거듭하면서 내가 가진 모습에 하나씩 다른 모습을 더하고 싶다”며 “다른 이에게 좋은 영향을 끼치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클립서비스 제공 |
고영빈은 27일 한국에서 초연될 스티븐 손드하임의 뮤지컬 ‘컴퍼니’의 주인공 바비(로버트의 애칭)에 빠져 산다. ‘컴퍼니’는 뮤지컬을 예술의 경지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듣는 손드하임과 ‘오페라의 유령’으로 유명한 연출가 해럴드 프린스가 손잡고 만든 코미디다. 미국 뉴욕을 배경으로 결혼에 얽매이기보다는 독신으로 살고 싶은 30대 남성 바비를 중심으로 그의 친구인 다섯 커플, 바비의 여자친구 3명이 등장한다. 11개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과 결혼, 인간관계에 대한 통찰을 웃음과 함께 보여주는 작품. 1970년 초연 당시 토니상 6개 부문을 휩쓸었으며, 2006년 존 도일의 연출로 다시 무대에 올라 토니상 리바이벌 작품상을 수상했다.
“처음에 로버트는 사랑이 별거 아니라고 생각했지만 나중에 ‘별거구나’라고 깨닫죠. 자기가 갖고 있던 신념과 가치관이 흔들리는 상황에 부닥치는 거죠. 처음 인물을 분석할 때는 로버트와 고영빈이 너무 달라 힘들었어요. 저는 ‘이게 맞다’란 생각이 들면 바로 실행에 옮기지만, 로버트는 ‘옳지만 나랑은 안 어울려’라며 선택을 미루거든요.”
손드하임의 음악은 등장인물의 감정선을 따라 치밀하게 변하며 일정한 틀에 맞춰지지 않는다.
“제가 음악적 소양이 부족해서 음악이 좋다, 나쁘다 표현하기도 어렵지만 음악에서 작곡가의 천재성을 느낄 수 있어요. 연습을 하다 보면 반주와 노래가 따로 가는데, 둘이 맞아떨어지는 순간이 있어요. 그럴 때 감동이 밀려오죠. 1막의 멜로디가 2막에 들어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때 ‘이 선율이 나를 도와주고 있네’ 싶어서 소름이 끼치더라고요.”
서른다섯 미혼의 고영빈과 화려한 싱글을 꿈꾸는 바비는 비슷한 점이 많다. 성격이 좋아 친구들 사이에 인기가 많다는 것도 그렇다.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했죠. 전 이왕 늦은 김에 삶에 자신감이 있고 안정되게 일을 할 수 있을 때 결혼하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런데 이런 얘기를 바비가 하고 있더라고요. 첫 대본 리딩 때 웃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하지만 고영빈이 내린 결론은 바비와 조금 다른 듯 보인다. 그는 “작품을 할수록 결혼을 하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털어놓았다.
“바비의 친구들이 티격태격해도 ‘너 없이는 못 살아’라고 결론을 내리잖아요. 헤어져도 같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만들고요. 이래서 사람들이 결혼을 하고 안정적으로 되고 싶어하는구나 싶어요. 혼자 살아서 외롭지만 외로움을 달래는 데는 익숙하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요즘 들어서는 혼자 하는 것들에 흥미를 잃고 있어요.”
일본 최대 극단 시키에서 활동하던 시절을 물었다. 그는 서울시뮤지컬단에 속해 있다가 프리랜서로 전환한 후 ‘그리스’ ‘페퍼민트’에 출연해 성공을 거뒀다. 인기 정점에 있을 때 일본으로 떠난 이유가 뭘까.
“준비가 안 돼 있는데 대중에 노출이 되니까 겁이 났던 것 같아요. 내가 모자라는 사람이란 생각이 드니까 그 부분을 채워야겠다는 마음도 생기고요.”
더 배워야 한다는 욕심에 어머니가 일본에서 사업을 하고 있는 점이 더해져 그를 새로운 곳으로 밀어낸 셈이다. 모든 것이 낯선 땅에서 새로 시작한다는 것은 힘겨웠다. 2003년 아르바이트와 이어지는 훈련, 일본어 공부에 힘든 나날을 보낼 때 ‘지저스 크라이스트 슈퍼스타’의 시몬 역 오디션을 보면서 기회가 찾아왔다. 그는 큰 기대 없이 오디션에 참가해 120명을 제치고 캐스팅됐다. 이어 ‘코러스 라인’에서는 한국인 최초로 대사가 있는 배역을 맡아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는 2006년 ‘겨울연가’로 한국 무대에 복귀했다. 끝이 보이는 데 굳이 시키에 매달릴 필요는 없었다.
고영빈은 성실한 배우다. 요즘도 일주일에 두 차례 음악 레슨을 받는다. “저더러 느낌이 좋은 배우라고 평을 하시죠. 제가 기술이 화려하거나 무대 장악력이 뛰어난 배우는 아니지만, 작품을 거듭하면서 추가된 모습을 하나씩 붙여가고 싶어요. 10년쯤 흐른 뒤에는 훌륭한 배우가 되어 있을 겁니다.”
그는 ‘인간성 좋은 배우’로 남고 싶다. “무대 위의 저 때문에 힘이 됐고 일이 해결됐다고 팬레터를 보내는 분들이 있어요. 그저 제 일을 하고 있을 뿐인데 그들의 인생에 영향을 끼치고 있는 거예요. 좋은 영향을 끼치는 배우, 마음이 따뜻한 배우가 되고 싶습니다.”
이보연 기자 byabl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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