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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왕설래]가케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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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08-04-08 08:30:43 수정 : 2008-04-08 08: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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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 중엽 일본. 무로마치 전국시대의 막바지로 군웅이 할거했다. 다케다 신켄이라는 한 장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과 패권을 다투다 1573년 순시 중 저격을 당해 치명상을 입었다. 신켄은 유언으로 3년 동안 자신의 죽음을 비밀에 부치라고 말한 뒤 사망한다. 

신켄 진영은 ‘가케무샤’(影武者) 곧 ‘그림자 전사’를 이용한다. 신켄을 빼닮은 좀도둑이 역할을 대신한 것이다. 신켄 진영은 위기를 벗어나지만 결국 가짜임이 탄로나면서 급속히 무너진다. 1980년 일본의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이 제작한 영화 ‘가케무샤’는 실체와 허상의 모호함을 통해 인간 존재를 진지하게 성찰했다는 등의 호평을 받아 칸 영화제의 그랑프리인 황금종려상을 받았다.

대역(代役)의 역사는 오래됐다. 삼국지에서 제갈공명은 조조의 위(魏)를 치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234년 사망한다. 당시 위의 장수는 사마중달. 그는 별자리 점을 통해 공명의 죽음을 직감하고 총공세를 폈다. 하지만 위나라 군사들은 공명이 수레에 앉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한 채 달아났다. 제갈량이 임종 직전 자신을 본뜬 목각 인형을 세워놓으라는 계책을 지시해놓았던 것이다.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았다”는 고사다.

5일 84세로 세상을 뜬 전설적 배우 찰턴 해스턴이 소피아 로렌과 열연한 영화 ‘엘시드’에도 가케무샤가 등장한다. 8∼15세기 스페인의 고토 수복 운동 때 국민적 영웅인 로드리고 비바르가 아랍 세력과의 결전에서 가슴에 화살을 맞고 숨진다. 하지만 ‘살아 있는’ 로드리고가 나타나면서 아랍군대는 궤멸된다.

구소련 초대 공산당 서기장을 지낸 이오시프 스탈린이 생전에 자신의 안전을 위해 4명의 가케무샤를 두고 대중 연설은 물론 방문자 면담까지 대행시켰던 사실이 그를 대역했던 전직 배우의 증언으로 밝혀졌다. 대역자는 구소련은 물론 독재국가에서 흔히 써오던 수법으로 알려져 있다. 체제 불안을 막고 신변을 보호하려는 방편인 것이다. 문제는 대역자가 자신이 진짜 영주라고 착각한 결과 조직과 나라를 망치는 일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권력자 주변의 측근들이 호가호위하는 것도 비슷한 결과를 빚는다. 대역자의 말로가 좋을 것 같지 않다.

황종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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