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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화 속의 여성] 무표정한 얼굴에 담긴 삶의 불확실성, 그리고 고독

입력 : 2008-04-22 15:07:03 수정 : 2008-04-22 15: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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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네 - 폴리베르제르 술집
“아무도 나를 주목하지 않았다. 아무도 나를 비난하지 않았다. 나는 거대한 군중 속에서 길을 잃은 원자(原子)였다.”

1800년대 파리의 거리를 배회했던 여류소설가 조르주 상드의 독백이다. 상드가 살았던 당시보다 세상은 더 풍요로워졌지만 그녀의 독백은 현대인의 공허한 가슴에 더욱 크게 메아리친다.

여기 아름다운 금발의 여성이 무표정하게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뒤를 장식하고 있는 거대한 거울 속에는 터져나갈 듯 많은 손님이 운집해 있고, 수염 난 노신사가 그녀에게 말을 걸고 있지만 왠지 그녀는 신사의 말에 공감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시끌벅적해야 할 술집의 분위기를 텅 빈 눈빛으로 쳐다보는 그녀의 모습은 노신사와 거울 속 풍경이 실제가 아니라 마치 환영처럼 느껴질 정도로 작품 속에서 이질감을 발한다.

인상주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화가 마네는 세련된 도시적 감각의 소유자다. ‘폴리베르제르 술집’은 당시 파리시민들의 삶의 불확실성과 고독감을 금발의 여성을 통해 단적으로 표현해 주는 그의 마지막 걸작이다.

주제는 상당히 침울하지만, 마네는 거장답게 작품 곳곳에 귀엽고 재미있는 요소들을 삽입했다. 우선 거울 속 술집의 왼쪽 상단에는 곡예사의 발목만 보인다. 서커스공연으로 유명했던 술집임을 알 수 있다. 또한 여성의 오른쪽 맨 끝에 있는 붉은빛이 도는 술병의 라벨엔 ‘마네, 1882’라 표기돼 있는데, 작가 서명을 병 라벨에 한 마네의 재치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카운터 위에 준비된 맥주 중에는 맥주의 본고장인 독일산이 한 병도 없다. 이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서 패배한 프랑스가 독일을 얼마나 혐오하는지를 보여주려는 마네의 회화적 불매운동이라 전해진다.
그림 속 노신사는 실체가 표현되지 않고 거울 속에만 존재하는데, 자신이 사랑했던 파리를 바라보는 마네 자신의 모습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모두가 취해 있는 공간에서 혼자 취하지 못하는 그림 속 여성의 소외감이든, 말년의 마네가 인간에 대해 품었던 관조적 시선이든 간에 폴리베르제르 술집의 광경은 현대를 사는 ‘군중’의 외로운 마음과도 너무 쉽게 오버랩된다.

현대인은 누구나 너무 바쁘다. 고로 주위 사람들에 대해 별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만남은 차가운 목적과 냉정한 이해관계 속에서 되풀이된다. 인정은 메말라 가고, 가슴은 황폐해지며, 같은 장소에 있어도 똑같이 고독을 느끼는 비극이 벌어진다. 누구나 목적 있는 관계가 아닌, 마음에 촉촉한 단비를 내려 줄 수 있는 진정한 친구를 찾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모든 것을 파는 현대의 상점에선 친구를 팔지 않으니 외로움은 더욱 깊어질 뿐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문득 생택쥐페리의 어린왕자가 사랑했던 여우의 명대사가 떠오른다. “내 생활은 아주 단조로워…… 사람들도 모두 똑같아. 그래서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너의 발소리는 땅 밑 굴 속의 나를 밖으로 불러낼 거야…… 그럼 난 네 머리칼을 닮은 밀밭도, 밀밭 사이를 지나가는 바람소리조차도 사랑하게 될 거야.”

길들여짐에 마음을 열고, 타인을 닮은 것을 사랑해 보는 것. 고독을 숨 쉬듯 들이마시며 사는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불멸의 금언이다.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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