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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하이호 주변의 유채밭. |
칭하이성 주도인 시닝(西寧)을 출발한 차가 르웨산(日月山 3520m)이라는 곳에 선다. 산 정상에는 일정(日亭)과 월정(月亭)이라는 두 정자가 서 있었다.
이곳이 유명한 것은 티베트에 불교를 전한 당나라 문성공주 때문이다. 티베트의 송첸감포왕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 당나라 공주를 비로 맞고 싶다는 뜻을 전한다. 화친 공주로 간택된 문성공주는 불상과 불경들을 가마에 싣고 이곳 르웨산에 이르렀다. 그 당시 이곳은 당나라와 티베트의 접경이었다. 공주는 이곳에서 작별을 고하며 당 태종이 하사한 일월보경(日月寶鏡)을 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문성공주의 애환이 서린 르웨산을 뒤로하고 칭하이호로 향한다.
호수는 보이지 않고 모래바람에 입 안이 서걱서걱하다. 호수가 가까워 오면서 사막이 나타났다. 조금 전까지 불어오던 모래바람의 진원지를 알 것 같았다. 사다오(沙島)라는 곳에서 차를 세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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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수 티베트 사람들의 축제.(왼쪽)◇싼장위안자연보호구 조형물. |
발이 푹푹 빠지는 사구(모래언덕)에 올라보지만 아직 호수는 조금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 거대한 호수는 매년 저수량이 줄어들어 주변이 점점 사막화한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간 몇십년 후면 호수가 사라질지도 모른다고 하였다.
철새 서식지인 냐오다오(鳥島)에 도착한 것은 해가 저물 시간이었다. 냐오다오 입구에서 전기차를 갈아타고 새들을 보러 갔다. 산란기가 되면 약 10만마리가 찾아든다고 하지만, 이미 철새들은 떠나버렸고 가마우지 몇 마리만이 이곳을 지키고 있었다. 호숫가 단애 위에 서서 가슴 시리도록 푸른 호수를 바라본다. 이곳 사람들은 이 호수를 ‘쿠쿠눠얼(庫庫諾爾)’이라 부른다. 몽골어로 ‘푸른 바다’라는 뜻이다. 중국 최대의 염호인 이 호수는 둘레만도 300km가 넘는다. 수면이 해발 3200m로, 고원의 또 다른 바다다.
먼 옛날, 티베트 고원이 바다였을 시간을 이 호수는 고스란히 기억하고 있었다. 티베트 고원의 융기로 미처 빠져나가지 못한 바닷물들이 ‘유민(遺民)’이 되어 천지개벽이 된 사실도 모른 채 이곳이 바다라고 우기며 살고 있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축축한 소금기가 폐부 깊숙이 파고들었다. 바닷가에서 나고 자란 내 세포들이 이 호수가 바다임을 먼저 알아챈다. 나는 온 몸으로 이 호수에서 태곳적 바다를 느낀다. 아! 쿠쿠눠얼이여….
칭하이호의 남쪽엔 잘 알려지지 않은 실크로드가 하나 더 있다. 마둬(瑪多)와 위수(玉樹)를 거쳐 라싸에 이르는 길이다. 당나라 문성공주가 티베트로 시집갔던 길이기도 하다. 문성공주의 묘가 있다는 위수로 길을 잡았다.
칭하이호를 지나 이제 길은 고원평원으로 접어들었다. 고도계가 해발 4200m를 가리키고 있다. 중국의 서부대개발로 갓 포장된 길은 자로 그은 듯 쭉쭉 뻗어 있다. 차는 시속 130km로 칭짱고원을 바람처럼 달려간다. 지도를 펼쳐 들고 왼쪽 평원 너머로 ‘아녜마첸산(Amne Machin·阿尼碼卿山)’을 찾고 있다. 중국의 어머니 서왕모(西王母)가 사람을 빚고 호호 웃었다는 신화 속의 산. 비록 그 산을 직접 보지는 못하더라도 그 산맥의 지류라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으로 차를 모는 운전사에게 물어보았지만 방향만 가리킬 뿐이다.
해질녘, 작은 현소재지인 마둬에 도착했다. 시닝에서 약 500km 떨어진 곳이다. 이곳은 웨이수이(渭水)와 황허 발원지를 찾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부근 제1 황허교(黃河橋)에서 이번 여행 중 처음으로 황허를 만났다. 길이 5464km에 달하는 황허의 수많은 다리 중 첫 번째 다리라고 한다. 아직 이곳은 물이 깨끗하다. 티베트 사람들은 이 강을 성스러운 강이란 뜻의 ‘마추’라 부른다.
마둬를 떠나 웨이수이 쪽으로 갈수록 유목민들의 천막이 점점 많아진다. 실개천 흐르는 푸른 초원 위에 한가로이 풀을 뜯는 검은 야크 떼가 점점이 박혀 있다. 해발 4000m가 넘는 천상고원의 풍경이다. 양쯔강의 상류인 퉁톈허(通天河) 대교를 지나자 싼장위안(三江原)자연보호구라는 조형물이 있다. 이 부근에서 세 개의 큰 강(양쯔강, 란창강·瀾滄江, 황허)이 발원한다고 적혀 있다.
옥이 열리는 나무라는 뜻의 위수에 도착했다. 위수, 그 나무는 중국 신화에 나온다. 쿤룬산 꼭대기에는 천제(天帝)의 궁궐이 있다. 그 궁궐에는 옥을 열매로 맺는 나무들이 자란다. 위수도 그런 나무 중의 하나다.
시내 어디를 둘러봐도 옥이 열리는 나무는 없었다. 겉보기에는 중국 변방 소도시에 불과했다. 대신 야크의 동상이 세워진 시내 광장에는 동충하초를 팔러 나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동충하초는 약효가 뛰어나 중국의 대표적인 건강보조식품으로 꼽힌다. 해발 3000∼5000m 고산지대에서 나는 동충하초는 산지가 여러 곳이지만, 이곳에서 나는 것을 최상품으로 친단다.
동충하초를 팔러 나온 사람들의 손에는 하나같이 100위안짜리 지폐 뭉치들이 들려 있었다. 이곳에서는 옥이 열리는 나무 대신 동충하초가 옥보다 귀한 대접을 받고 있었다. 지구온난화로 생산량이 점차 줄어들어 g당 가격이 금보다 비싸다고 한다.
중국의 변방 도시 위수가 세상 사람들에게 알려진 것은 문성공주 때문이다. 문성공주는 시안(장안)을 출발해 시닝, 마둬, 위수 등을 거쳐 라싸로 향했다. 이때 문성공주는 위수에서 약 1년 간 머무르며 이곳 사람들에게 가지고 간 곡물 종자를 전해주고 경작법과 방직기술 등을 가르쳐 주었다고 한다. 유목에만 의존하던 이곳 사람들에게 문성공주는 새 삶을 열어준 셈이다.
훗날 문성공주가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은 이곳 사람들은 그녀의 가묘를 세워 기렸다고 한다. 문성공주 묘는 시내 외곽 계곡에 있었다. 기도 깃발인 ‘타루초’들이 계곡 입구에 걸려 있고, 공주를 모셨다는 사원 문은 굳게 잠겨 있었다. 입구에 있는 사원에서 어린 라마승 몇 명이 이방인을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여행작가
≫여행정보
베이징에서 티베트 라싸까지 가는 칭짱열차가 칭하이성의 주도인 시닝에 선다. 이 열차는 칭하이호를 지나간다.
칭하이호는 시닝에서 150km 떨어져 있다. 버스로 약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칭하이호 철새들을 보려면 4∼6월이 좋다. 시닝에서 위수까지는 버스가 자주 다닌다. 해발 4000m가 넘는 고산지대를 지나야 하니 고산증에 대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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