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위 71도 23분. 배로우(Barrow)는 북아메리카 최북단에 있는 봉우리 포인트로 알래스카주에서도 가장 인적이 드문 지역이다. 봄에는 3개월 동안 해가지지 않는 백야현상이, 겨울에는 30일 동안 해가 뜨지 않는 극야현상이 일어나는 기이한 도시. <써티데이즈 오브 나이트>는 바로 이 곳 배로우의 겨울을 소재로 하여 제작된 공포와 스릴러의 혼합장르물이다. 이 영화는 뮤직비디오 ‘뮤즈’로 대표되는 감독 데이비드 슬레이드보다는 <스파이더맨> 시리즈 연출로 세계적으로 유명한 샘 레이미의 제작과 꽃미남 스타 조쉬 하트넷으로 대변된다.
영화는 이제 막 극야현상이 벌어지는 칠흑 같은 밤으로 시작된다. 보안관 올슨(조쉬 하트넷)은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련의 기이한 사건에 불길한 예감을 느낀다. 줄에 묶여 있던 개들이 몰살을 당하고 겁에 잔뜩 질린 낯선 이가 나타나서 모든 사람들이 무참하게 살해당할 것이라고 경고했기 때문이다. 곧 이어 등장한 정체불명의 괴한들은 무시무시한 괴력으로 주민들을 살해하고 피를 빨아 먹는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올슨과 그의 아내(멜리사 조지)를 비롯한 몇 사람만이 극야현상이 끝나기만을 고대한다. 괴한들의 약점이 햇빛이라는 걸 알지만, 무려 한달을 버텨야 되는 절박한 상황.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 (중략)
이 영화에 대한 첫인상은 마치 ‘공포 장면 종합선물세트’ 같다. 갑자기 등장한 괴한들은 흡혈귀 즉 뱀파이어보다는 <X 파일>에 등장하는 외계생명체라는 느낌이 든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고 자신의 행적을 감추기 위해 도시 전체를 잿더미로 만들려하기 때문이다. 뱀파이어하면 연상되는 ‘운명론’이니 ‘말세’와 같은 종교적 색채도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그리고 이 건물 옥상에서 저 건물로 한 걸음에 옮기고 달리는 차를 뒤쫓을 정도로 괴력을 발휘하는 걸 보면 ‘늑대인간’이 떠오른다. 올슨(조쉬 하트넷)이 뱀파이어들과 싸우기 위해 자신의 몸에 뱀파이어의 혈액을 주사하는 장면은 <블레이드>에서 반은 인간으로 반은 뱀파이어로 태어난 주인공(웨슬리 스나입스)이 막강한 적을 물리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그 자신도 사람의 피를 빠는 모습이 연상된다. 특히 올슨이 도끼를 휘두르며 뱀파이어의 목을 자르는 장면은 왠만한(?) 공포영화에서도 쉽사리 볼 수 없는 광경이다.
하드코어적인 충격 장면이 연이어 등장하는 <써티 데이즈 오브 나이트>. 허나 자극적인 장면이 업그레이드되고 극의 종반부로 치달으면서 긴장감을 고조하려 하지만, 관객(필자)에게 쉽게 다가오지 않는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아무리 ‘생략’과 ‘여백’이 있는 영화적 코드라고 할지라도 관객의 이해와 공감대에 필요한 최소한의 설명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본다. 즉 알아들을 수 없는 말들을 지껄이는 이 색다른 뱀파이어의 정체가 도대체 누구인지 혹은 어째서 많고 많은 곳을 놔두고 굳이 그곳에 나타나야 했는지 등이다. 다짜고짜 개들을 모조리 죽이고 사람들을 가축 마냥 살해하는 장면은 무섭다기보다는 혐오감만 가중시킬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 영화의 극적 개연성 여부를 따질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필자 역시 관객의 한사람이고, 이러한 유형의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을테니 말이다. 이 영화의 장점은 앞서 언급한 샘 레이미 특유의 특수효과 장치와 조쉬 하트넷의 연기 변신이며 마음 편하게(?) 극장에서 고어 장면을 보면서 스트레스를 풀려 하는 관객에게는 괜찮은 작품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 연동원 역사영화평론가 yeon042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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