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문화산책]설날, 그 살갑던 풍경이 그립다

관련이슈 문화산책

입력 : 2008-01-18 15:35:53 수정 : 2008-01-18 15:35:53

인쇄 메일 url 공유 - +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예쁜 바지저고리 고운 설빔 차려입고/ 세배가는 아이들 기뻐 신바람났네/ 소매 가득 돌아오니 무엇을 얻었는가/ 붉은 곶감 색색 강정들 꿰어 들었다.”

유만공의 정월세시 노래는 아름답고 흥겹다. 설날은 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명절, 몸과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고 조상께 차례드림으로 시작한다. 차례 음식에는 지극한 정성이 담기고 차례상을 바라보는 아이 입엔 군침이 돈다. 차례를 마치면 집안 어른들께 세배드리고 떡국으로 아침을 먹는다. 떡국 한 그릇 먹어야 비로소 나이를 한 살 더한다고 여겼다. 떡국은 본디 꿩고기 국물로 끓였으나 요즘에는 꿩이 귀해 닭고기 국물을 쓴다. ‘꿩 대신 닭’이라는 속담 그대로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일가친척 이웃 어른들 찾아뵈어 세배를 드리고 어른들은 덕담을 해준다. 세배는 조상 산소에도 올린다. 가족들이 설빔 때때옷 곱게 차려입고 정겨운 이야기 오순도순 주고받으며 눈길 속 줄지어 성묘가는 시골길 모습은 아름다운 정경이다.

섣달 그믐날 밤에는 벗어 놓은 신을 방에 들여 꼭꼭 숨긴다. 앙괭이(夜光鬼)가 하늘에서 내려와 발에 맞는 신이 있으면 신고 가 버린다 해서다. 자정에 들면 어둠 속에서 복조리 사려! 외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설날부터 열이튿날까지 12지에 따라 하루하루 지키는 일거리들이 있다. 정월 들어 첫 쥐날(上子日)에는 쥐불놀이를 한다. 논밭두렁 풀을 태우면 쥐가 없어져 한 해 농사가 잘된다고 믿었다. 첫 소날(上丑日)에는 우마를 쉬게 하며, 첫 호랑이날 남의 집 뒷간을 쓰면 호환(虎患)이 있으므로 근신한다. 첫 토끼날에는 남자가 먼저 일어나 대문을 열어야 가문이 융성해진다. 첫 용날 이른 새벽 아녀자들이 앞다투어 물동이 이고 샘물을 길러 가는데 용이 하늘에서 내려와 우물 속에 낳은 용알을 떠오는 것이다. 용알이 든 물로 밥을 지으면 한 해 풍년이 든다고 여겼다. 첫 뱀날 머리칼을 자르면 집안에 뱀이 들어와 화를 입힌다 하였고, 첫 말날에는 말에게 제사 지내 제물을 바쳐 위로했으며, 첫 양날은 걸음걸이가 경망한 양에 미루어 어촌에서는 출어를 삼갔다. 첫 원숭이날 칼질하면 손을 벤다고 해서 일손을 쉬고, 첫 닭날 바느질 길쌈을 하면 손이 닭발처럼 흉해진다 하여 부녀자들은 일을 쉰다. 첫 개날에는 풀을 쑤지 않는데, 풀 쑤면 개가 먹은 것을 토한다고 하며, 첫 돼지날 얼굴이 검은 사람이 왕겨나 콩깍지로 살결을 문지르면 희고 고와진다 했다.

작은 보름날에는 모두가 자기 일에 따라 아홉 차례의 행동을 한다. 글방에 다니는 학동은 글 아홉 줄을 쓰고, 농사꾼은 나무 아홉 짐, 처녀들은 나물 아홉 바구니, 부인들은 빨래 아홉 가지를 한다. 밥도 아홉 번 먹는다. 찹쌀에 기장·차수수·검정콩·붉은팥 다섯 가지 곡식을 섞어 지은 오곡밥을 나물과 함께 먹는다. 이날 저녁 가난한 사람이 부잣집 흙을 파다가 자기네 부뚜막에 바르면 부잣집 복이 옮겨 와서 잘살게 된다 하였다. 이를 ‘복토(福土)훔치기’라 했는데, 부잣집에서는 흙을 도둑맞지 않으려고 불을 밝혀 머슴으로 하여금 지키게 했다.

초하룻날 지나며 수그러들던 명절 기분은 대보름날 다시 절정을 이룬다. 정월대보름 이른 아침 부럼깨물기, 귀밝이술 마시기, 더위팔기로 부산하며 환한 웃음소리 가득 집안이 밝아온다. 한낮 내내 요란하던 풍물소리 잦아들면서 해는 지고 밤이 온다. 달이 막 떠오르기 시작하면 짚을 쌓아 만든 ‘달집’에 불을 놓는다. 이때 마을 사람들은 저마다 동산에 떠오르는 달맞이를 한다. “다님, 다님. 절합니다. 올해에는 총각 장가가게 해주십시오. 처녀 시집가게 해 주십시오. 다님, 다님….” 봄 여름 가을 겨울 하늘 우러러 풍작을 빌며 이웃 서로 도와 철 따라 씨 뿌려 가꾸어 알차게 갈무리하면서 자연의 섭리에 감사하는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경건하고 정겨운 우리 선인들 삶의 모습, 그 살가운 문화가 한없이 그립다.

고정일 소설가·동서문화 발행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차주영 '완벽한 비율'
  • 차주영 '완벽한 비율'
  • 샤오팅 '완벽한 미모'
  • 이성경 '심쿵'
  • 전지현 '매력적인 미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