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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람의 삶]이양희 교수 "장애·국적 편견 버려야 국가 경쟁력 높아져”

입력 : 2007-11-23 15:48:09 수정 : 2007-11-23 15:4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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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아동권리위원장인 성균관대 이양희 교수(왼쪽)가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성균관대 제공

“46년 전 꿈이 실현되는 현장에 부모님을 초대할 수 있어서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지난 5월 임기 2년의 유엔 아동권리위원장으로 선출된 성균관대 이양희(51·여) 교수(아동학)는 지난달 17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20여분에 걸쳐 ‘아동폭력 유엔총회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 자리에는 한국 정계의 거목인 이 교수의 부친 소석(素石) 이철승(헌정회 회장·서울평화상문화재단 이사장)씨와 모친 김창희씨가 함께했다.

한국인으로는 이종욱(별세) 전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에 이어 3번째 유엔기구 수장이자 첫 유엔 인권관련 기구 위원장이 된 이 교수는 영광을 부모에게 돌렸다.

유엔 아동인권위 본부가 있는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하기 전인 4일 성균관대 연구실에서 만난 이 교수는 “1961년 장면 박사 정권시절 아버지가 국방분과위원장으로 유엔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관하셨는데, 귀국 후 당시 5살인 저에게 ‘너를 반드시 유엔으로 보내야겠다’고 말씀하셨죠. 그때는 유엔이 무엇인지, 어떻게 갈 수 있는지도 몰랐는데 결국 아버지의 말씀이 씨가 됐네요”라며 밝게 웃었다.

이 교수의 부모는 그가 어릴 때부터 유난히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강조했다고 한다. 사회지도층은 제 목소리를 못 내는 취약계층을 위해 헌신해야 한다는 말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은 것이다. 이 교수는 “남들보다 많은 기회를 받은 만큼 사회에 베풀어야 한다는 부모님의 영향을 받아 불모지나 다름없던 분야를 개척했다”고 밝혔다.

이 교수는 국내 장애아동 특수교육의 선구자로 꼽힌다. 1974년 미국 조지타운대학(불문학)을 졸업한 이 교수는 1981년 미주리대에서 특수교육 박사학위를 받았다. “학부 전공을 불문학으로 선택한 것은 유엔에 가야 한다는 아버지의 뜻에 따른 것이었어요. 하지만 어린 시절 철봉을 하다 장애가 된 외삼촌을 보며 장애아를 가진 가족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고 특수교육을 전공으로 주저 없이 택했어요”라고 회고했다.

박사학위 취득 후 귀국한 이 교수는 1991년 성균관대 교수로 임용됐고 1992년 아동학대협회에 가입했다. 이후 1996년 아동권리학회 창설을 공동 발의한 그는 한국특수교육학회원, 한국발달심리학회원, 한국아동학대예방협회 이사, 한국행동요법학회 이사, 한국자폐학회 부회장, 한국장애아동인권연구회장 등 활발하게 활동해 왔다.

이 교수는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뒤 장애아들이 비장애아들과 같이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사회분위기와 장애아들이 제대로 된 교육조차 받을 수 없는 교육환경을 보고 심한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 대학에서 배운 것을 현실과 접목시키기 위해서 열심히 발로 뛰어다녔다고 한다. 학위와는 별도로 현장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심리치료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그 과정은 녹록지 않았다. 정치·사회적으로 민주화가 덜 진행된 1990년대 초반에 인권을 이야기하면 반체제이자 좌익으로 보는 시각이 팽배했었기 때문이다. 아동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전통적인 효(孝) 사상을 저해하는 것으로 비쳐졌다. 아동권리 홍보 거리 캠페인을 나갈 때는 험한 소리도 숱하게 들었다.

이 교수는 “당시 아동에게는 책임과 의무만 있었지 권리는 없었다”며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회분위기에 힘도 들었지만 가야 할 길이라는 신념에 묵묵히 갔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2003년 각계 추천으로 유엔 아동권리위원에 입후보해 당선됐다. 2005년 재선에 성공한 뒤 부위원장에 당선됐으며, 지난 5월에는 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유엔 진출 4년 만에 위원장에 당선된 것은 아동전문가로서의 능력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유엔 아동권리위 위원 중 법률가가 아닌 학자로는 이 교수가 유일하다.

그는 “2002년 외교통상부에서 시민단체, 학계에서 유엔 아동권리위원으로 추천됐다며 연락이 왔을 땐 당락 여부에 관계 없이 놀라면서도 감사했다. 제 잠재의식 속에 늘 자리 잡던 유엔으로 가고 싶다는 바람이 실현될 수 있다는 데 너무 감격했다”며 감상에 잠겼다.

이 교수는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중국어, 일본어 등 7개 국어에 능통하다. 그는 “유학 시절 집에서 소포가 왔는데, 어머니의 치맛단을 뜯어서 만든 청색 비단주머니에 흙이 담겨 있었다”며 “‘대한민국의 딸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며 고향집 앞 마당의 흙이라는 편지와 함께 담긴 주머니는 제 위치가 어디인지를 일깨워줬다”고 회고했다.

이 교수가 바라보는 아버지 소석은 어떤 인물일까. 그는 “김대중, 김영삼 전 대통령 등 수많은 정치인이 집에 드나들었으며, 그들을 ‘할아버지, 아저씨’라고 불렀다”며 “공천에 탈락한 사람들이 집 앞에서 화형식을 하거나 자해하는 것을 보면서 아버지의 고뇌를 어렴풋이 알 수 있었다”고 말했다.

특히 아버지는 이 교수가 어린 시절부터 정치 현안을 놓고 함께 토론하기를 즐겼다. 이 교수는 이런 영향을 받아 유신시절 발이 묶인 아버지를 위해 미 하원의장실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조지타운대 관계자들을 설득해 대학 초청 형식으로 아버지를 미국으로 오게 만들었다.

그는 임기 2년 동안 3가지 목표를 세웠다. ▲아동폭력 근절 ▲모든 폭력의 근원인 빈곤 퇴치 ▲아동권리협약에 진정제도 마련 등을 위한 선택의정서 틀 마련이다.

그는 “국내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과 동일한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법적·제도적 개선을 위해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며 “국내외 활동으로 점진적인 변화를 이끌어낼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이 교수는 “장애, 아동, 국적 등 각종 편견을 버려야 우리나라의 국제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라며 “모든 편견을 버리고 인간으로서의 몫을 다하는 것이 우리의 책무”라고 강조했다.

장원주 기자 strum@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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