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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빛낸사람들]미하엘 슈마허 1969∼ 독일

입력 : 2007-11-03 12:38:00 수정 : 2007-11-03 12: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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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문 페라리팀 이적 이후 5년 연속 대표 드라이버이자 페라리팀 사상 최다 승리를 거둔 드라이버. 그의 존재 없이는 세계 최고의 경주차들이 순위를 다투는 자동차 경기인 F1(포뮬러1)을 말할 수 없다. 경이적인 드라이빙 테크닉, 냉정한 판단력, 집념에 승리를 위한 부단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 것이 슈마허의 스타일이다. 그는 지난해 페라리팀에게 16년 만에 컨스터럭터 타이틀을 안겨줬다. 어린 시절 슈마허는 독일의 만하임 케어핀에서 엔진이 달린 카트와 첫 인연을 맺는다.
당시 슈마허의 부친은 손재주가 좋아 고카트(GO Kart) 정비사로 일했다. 1980년 슈마허는 벨기에에서 열린 세계 카트 선수권대회를 보면서 당시 최고의 레이서였던 아이르톤 세나의 모습에 깊은 감명을 받는다.
15세이던 1984년 독일 주니어 카트선수권을 우승하고, 1987년 유로피언 챔피언십에서도 1위를 차지한다. 선수로서 풀 시리즈를 뛴 첫해에는 10경기에서 9승을 따내는 기록을 세운다.
이를 눈여겨본 빌리 베버(당시 F3팀을 운영하며 훗날 슈마허의 매니저가 됨)는 슈마허에게 F3 머신 테스트를 제안한다.
이 테스트에서 그는 7, 8랩을 주행할 때 이미 베버팀의 정규 드라이버보다 1.5초 이상 빠른 기록을 내며 주위를 놀라게 한다.
F3 진출 첫해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던 칼 벤들링거와 하인즈 프렌첸을 제치고 시리즈를 평정한다.
이들은 훗날 최고 스피드를 자랑하는 F1에 진출해 또다시 만나게 된다. 1994년 세계 챔피엔에 등극한 슈마허는 95년에도 또 한번 챔피언에 올라 세계선수권 2연패를 이룬 최연소 선수가 된다. 96년 슈마허는 페라리팀으로 이적한다.
강력한 라이벌이던 아이르튼 세나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 슈마허는 F1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굳힌다. 화려한 명성을 증명하듯 97년에는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발표한 고액소득 운동선수 40인 가운데 4위에 오르기도 한다. 1위는 당시 농구황제인 마이클 조던(7830만달러)이었고, 슈마허는 3500만달러(400억원)이었다. 슈마허가 가장 좋아하는 애마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카 페라리의 360모데나. 국내에서 열린 수입차 모터쇼에서 선보이기도 한 페라리 360모데나는 3600㏄, 400마력의 엔진에 최고시속은 295㎞로, 시속 100㎞에 도달하는 데 4.5가 걸린다. 주문 계약한 뒤 1년을 기다려야 할 정도로 인기 모델이다.
〈도움말: 삼성교통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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