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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수의 예술, 영화에서 삶과 죽음을 성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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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초에 24번의 죽음-로라 멀비의 영화사 100년에 대한 성찰/로라 멀비 지음/이기형․이찬욱 옮김/현실문화/1만3000원
‘1초에 24번의 죽음’. 이 제목은 영화 예술과 관련한 흥미로운 발견을 보여준다. 영화는 셀룰로이드 필름이 영사되어 스크린 위에 움직이는 이미지를 보여주는 영상매체이다. 1초에 24번의 사진 프레임이 작동함으로써 나타나는 이미지는 움직임과 정지의 시간을 반복한다는 것이 저자의 관심사다. 이때 사진의 정지된 이미지는 생명이 없는 상태인 ‘죽음’과 연결되고 스크린 위의 황홀한 이미지는 ‘삶’이라는 등식에서 ‘1초에 24번의 죽음’이라는 책의 제목이 탄생했다.
영화의 역사는 언제 시작되었을까?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파리의 한 카페에서 시네마토그래프로 열차가 도착하는 장면을 보여주면서부터이다. 처음 영화가 상영되자 당시 직업 마술사인 조르주 멜리에스는 “정말 뛰어난 속임수야! 저건 나를 위한 것이야!”라고 외쳤다. 막심 고리키는 “그것을 보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그림자이기보다는 움직이는 그림자이다. 온 도시를 영원한 잠에 내던지는 저주와 귀신들 그리고 여기에서 악마의 영혼들이 생각나면, 당신은 마치 마술사 멀린이 당신 앞에서 사악한 속임수를 펼치는 것 같이 느낄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영화의 탄생은 마술과 같은 속임수로 인식되었다.
영화의 탄생부터 축복보다는 경계의 시각이 우세했다. 정신분석학의 대가 프로이트는 “사람들은 요새 유행하는 단발머리를 피하는 것보다 오히려 영화를 피해가기가 더 어려울 것이다. 여하튼 나는 머리를 자르지 않을 것이며, 개인적으로 나는 이런 영화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라고 말함으로써 영화를 일종의 유행으로 취급하였다. 19세기 후반까지도 영화와 문화를 연결 짓는 것은 쓸모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영화는 점점 성장하였다. 이제 100여 년이 흘러 영화의 나이가 백 살을 넘어섰다. 저자는 1895년 영화의 탄생으로 거슬러 올라가 20세기 말 디지털 테크놀로지의 변화 속에서 영화의 죽음을 알리는 듯한 징후들을 포착하여, 과연 우리 시대에 영화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묻고 있다. 영화사 100년을 뒤돌아보며, 인간의 삶을 영화와 유비시키며 ‘삶은 무엇인가’라고 묻듯이 ‘영화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생의 황금기가 있듯이, 영화의 최고 전성기인 1950, 60년대의 흑백 고전 영화를 다시 보는 의미를 제공한다. 저자는 히치콕의 ‘사이코’, 로셀리니의 ‘이탈리아 여행’, 서크의 ‘슬픔은 그대 가슴에’라는 작품 등에 영화사적 가치를 부여했다.
이 책은 1970년대에 할리우드 대중영화에 내재된 가부장적 남성 시각을 철저히 비판함으로써 시네 페미니스트(Cine-Feminist)라는 별칭을 얻은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역작이다. 저자는 “영화는 불확실성을 더 확실하게 만든다”는 지가 베르토프의 말로 영화 미학을 정의하면서, 인간이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흔들리듯이 영화 또한 삶과 죽음의 불확실성이 공존하는 매체로 본다. 이러한 속성이 눈속임의 환영이라는 영화를 오랫동안 매력적인 매체로 존재하게 했음을 역설하고 있다.
오늘날 비디오 및 DVD로 대표되는 디지털 테크놀로지로의 빠른 변화는 관객에게 많은 주도권을 주었고, 각자가 삶의 의미를 찾아야 하는 것처럼 영화의 의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순전히 관객의 몫일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속임수의 예술에서 출발한 영화가 삶과 죽음의 문제를 성찰하게 한다는 점에서 미학적이지만 다분히 철학적이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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