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마이니치 등 일본 언론은 엊그제 인도를 방문하는 아베 총리가 일본의 전쟁범죄 무죄를 주장했던 인도인 펄 판사 유족과의 면담을 강력히 희망했다고 보도했다. 펄 판사가 누구인가. 도쿄전범 재판 때 11명의 판사 중 유일하게 도조 히데키 등 A급 전범 전원에 무죄 의견을 낸 인물이 아닌가. 일본은 주변국의 눈치를 보고 있다가 마침내 2005년 6월 군국주의 박물관으로 불리는 유슈칸 옆에 펄 판사의 공적비를 세웠다. 총리가 그의 유족을 찾는 것은 국제사회에 A급 전범 감싸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아베 총리가 주변국의 반발을 예상하면서도 이 같은 행보에 나서려는 저의는 빤하다. 지난 7월 참의원 중간선거에서 당한 참패를 만회하고 어떻게든 보수층의 지지를 끌어내 정권을 유지하려는 속셈일 것이다. 하지만 이야말로 내치를 위해 이웃나라와 등을 지는 어리석음이 아닌가. 문제는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이다. 그는 ‘아름다운 나라’라는 저서에서 A급 전범 무죄론을 주장한 바 있다. 지난달 말 미하원이 일본군위안부 강제 동원에 대한 일본 총리의 공식 사과 등 결의안을 채택했을 때도 그는 강제성을 부인하고 유감까지 표명했다. 한·일 간은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교과서 왜곡, 강제노동 보상 문제 등 풀어야 할 과거사가 많다. 한국, 중국 등과 쌓인 숙제를 풀고 국제사회에서 미래의 동반자가 되고자 한다면 아베 총리는 더 이상 악수(惡手)를 두지 말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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