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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살인의 추억''에 빠지다

입력 : 2007-08-09 12:31:00 수정 : 2007-08-09 12: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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엽기적인 살인 소재 추리·미스터리극 봇물
관객·배우 두뇌싸움 유도… 현실부조리 고발도
올여름 대학로엔 ‘살인’이 유행이다. 엽기적인 살인을 소재로 한 추리극이 대학로를 장악하고 있다. 10개월째 장기공연 중인 ‘쉬어 매드니스’를 필두로 ‘조선형사 홍윤식’ ‘진짜, 하운드 경위’ ‘어떤 사건’은 물론 오는 25일 개막을 앞둔 ‘8인의 여인’에 이르기까지 미스터리를 싫어하는 관객도 피해갈 수 없는 납량특집의 계절이다.
하지만 관객의 말초신경만을 자극하는 납량 영화와는 구별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가질 만하다. 추리극은 연극 관객의 능동성을 살려 배우와 관객이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지적 유희의 일환으로 선택된 장르다. 이 작품들에서 살인사건은 극의 시발점이 될 뿐, 범인이 누구인가는 중요하지도 명확히 밝혀지지도 않는다. 충격적인 반전보다는 열린 결말을 선보인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쉬어 매드니스’는 대놓고 배우와 관객의 지적인 두뇌싸움을 유도한다. 미용실에서 벌어진 살인사건을 소재로 한 이 연극에서 경찰은 미용실에 있던 네 사람을 용의자로 지목한다. 하지만 신문을 거쳐 살인범을 정하는 건 관객들 몫이다. 매일 관객들의 다수결 투표에 따라 범인과 결말이 달라지는 작품이다. 신문 과정에서 허를 찌르는 관객의 질문과 주장이 나머지 관객들을 웃기고 출연배우와 기싸움으로 이어지면서 극은 일종의 두뇌게임인 동시에 코미디로 화한다.
‘쉬어 매드니스’ 제작자인 뮤지컬해븐 박용호 대표는 “관객이 깊이 생각하고 참여할수록 덫이 생기는 매뉴얼이 준비된 연극”이라면서 “그날그날 관객에 따라서 재미가 달라질 수 있는 작품이라 꾸준히 반응을 얻고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추리극에 진지하게 빠져들수록 코미디에 가까워지는 상황은 ‘조선형사 홍윤식’도 마찬가지다. ‘코믹 미스터리 수사극’이란 타이틀을 단 ‘조선형사’는 1930년대 경성을 배경으로 괴이한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들의 혼란스러운 내면 풍경이 희극적으로 묘사된다. 찜찜하게 봉합되는 수사의 종료 상황은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는 진실’에 대해 생각케 한다.
◇‘8인의 여인’(위에)◇‘조선형사 홍윤식’

결국 연극 연출자들이 추리극을 통해 연출하고자 하는 것은 현실의 부조리한 국면. ‘진짜, 하운드 경위’는 살인사건 추리극을 보는 두 평론가의 이야기를 통해 평론가 권력에 대한 풍자를, ‘어떤 사건’은 “나를 형성하는 것이 나인가, 타인의 시선인가’ 하는 관념적 주제를 던진다. ‘8인의 여인’도 여덟 조각의 퍼즐이 맞춰지면서 살인사건 용의자였던 8명 여성들의 가식과 본능적 욕망을 들춰낸다.
하지만 몇몇 작품에서 논리적 허점을 열린 결말, 환상과 실재의 결합으로 성급히 마무리하는 경향도 보인다. 연극평론가 노이정씨는 “추리·미스터리 연극은 현실의 부조리성이나 문제를 실어 나르기 위해 새로운 구조의 이층집을 짓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면서도 “신선한 소재나 획기적 캐릭터 개발의 장점이 있지만, 때로 현실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의지와 능력이 박약할 때 쉽게 접근이 가능한 장르이기도 해 함량 미달의 작품이 나올 수 있다”고 경계했다.

김은진 기자 jisland@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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