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한·일 월드컵축구에서 ‘4강 신화’의 주역이었던 수문장 이운재는 지난 22일 한국이 47년 만에 우승을 노리는 2007 아시안컵축구대회 ‘난적’ 이란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 동물적 감각을 드러내며 팀을 4강으로 이끌었다. 이운재는 ‘신의 가혹한 룰렛게임’으로 불리는 승부차기에서 두 차례나 신들린 선방을 펼쳤다. 2002년 월드컵 스페인과의 8강전 승부차기에서도 ‘거미손’ 방어로 온 국민을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때와 비슷한 감동을 선사했다. ‘시련 속에서도 나는 죽지 않았다’는 이운재의 고요한 외침이었다.
이운재는 지난해 독일월드컵 이후 잔 부상으로 소속팀 수원과 국가대표팀 주전 경쟁에서 밀려나면서 혹독한 시련을 겪었다.
1994년 3월5일 미국과의 친선경기에서 A매치(국가대항전) 데뷔전을 가진 이운재는 지난해 7월19일 광주 상무전부터 팀 동료 박호진에게 밀려 벤치를 지켰다. 당시 차범근 수원 감독은 “이운재를 당분간 선발로 기용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이운재는 “이적하겠다”고 맞서는 등 감독과의 불협화음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이 여파로 “소속팀에서 주전으로 뛰지 못하는 선수는 국가대표로 선발하지 않겠다”는 핌 베어벡 대표팀 감독의 의지에 따라 태극마크도 잃었다. 지난해 10월8일 가나와의 친선경기 때 김영광(울산 현대)에게 간직해오던 태극마크를 빼앗긴 것.
이운재는 부상에서 회복된 뒤에도 불어난 체중으로 골문을 지키지 못했다. K리그에서조차 출전 횟수가 적다 보니 경기 감각도 떨어졌다. 한국 최고의 수문장을 자처했던 이운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운재는 주저앉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부활을 다짐했다. 훈련에만 집중하며 체중 줄이기에 나섰다. 이운재는 95㎏에 육박하던 몸무게를 80㎏대 후반으로 줄였고, 결국 소속팀 주전 자리를 되찾았다. 태극마크도 다시 달았다. 태극마크를 잃은 지 8개월 만인 지난 6월2일 네덜란드와의 평가전에서 주전 자리를 꿰찼다.
베어벡호의 맏형이자 주장인 이운재는 “이란을 꺾고 4강에 올랐을 뿐이다. 25일 이라크와의 준결승을 남겨두고 있다. 그때 이기지 못하면 이란전 승리도 의미가 없다”며 이라크전 각오를 드러냈다.
강용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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