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인체미의 정수는 허리와 엉덩이의 비례에서 결정됐다. 허리와 엉덩이의 비율이 0.7: 1일 때를 ‘황금비’로 여겼고, 많은 작품들에 의해 공식화돼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세기의 대표적인 화가인 앵그르의 작품을 보면 당대 최고의 ‘몸짱’ 면모를 발견할 수 있다. 비례, 균형, 조화라는 원칙 속에 완벽한 예술을 추구한 셈이다.
여체가 지니는 조화로운 곡선과 움직임을 정확하게 포착해 낼 수 있는 그의 재능은 대표작인 ‘샘’에서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샘의 요정’인 주인공의 몸매는 당시의 미의 기준에 맞춰 완벽한 비례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샘의 요정’은 그리스 로마 시대의 미인일 뿐이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데생 실력의 앵그르도 이 작품을 바라보는 현대인의 변화된 기준까지 표현해낼 수는 없었을 것이다. 허황된 상상이지만 만약 샘의 요정이 현대의 슈퍼모델 대회에 참가했다면? 수상이 어렵다는 것은 삼척동자도 예상할 수 있을 터.
그렇다면 현대 미인의 기준이 많이 달라진 것일까? 지난 3월 폴란드 그단스크대 연구진은 최근 미인대회에서 최종 후보까지 오른 여성 24명과 일반 여성 115명을 비교 분석해 세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몸짱을 선정, 발표했다. 이른바 기준에 의해 걸러진 최종 후보들은 평균 키 174cm에 허리가 가슴의 76%, 엉덩이의 70%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허리와 엉덩이의 비례는 0.7:1이라는 고전의 비율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몸짱을 판별하는 데 주로 적용됐던 ‘가슴-허리-엉덩이’ 라인보다는 허벅지와 종아리의 둘레가 더 중요한 기준이 됐다는 점이다. 미인대회 최종 후보들은 키와 허벅지의 비율이 일반인보다 12% 더 낮아 훨씬 길고 늘씬하게 보였고, 종아리의 지방층은 15mm로 일반인의 18mm보다 더 얇았다.
한 마디로 잘록한 허리에 풍만한 엉덩이와 가슴을 가졌지만 팔다리는 길고 가늘기만 한 다소 기형적인 몸매가 미인으로 손꼽히더라는 것이다. 미국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은 이런 기준을 모두 만족시키는 여성으로 꼽혔다. 앵그르의 ‘샘의 요정’과 비교해보면, 결국 아름다운 몸에 대한 가장 두드러진 인식의 변화는 ‘기럭지(길이)’에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시대에 따라 ‘아름다운 몸’에 대한 기준은 변해 왔지만, 아름다움 자체에 대한 동경은 마치 본능처럼 인류를 사로잡아 왔다. 다만 지금은 모두가 갖기 원하는 황금비례를 유행처럼 좇기보다 여성 스스로가 지닌 비례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이를 아름답다 느낄 줄 아는 심미안이 더욱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기럭지’에 상관없이 샘의 요정도, 나오미 캠벨도 모두 ‘아름다운 몸’임에 틀림없듯이.
심형보 바람성형외과 원장(www.breas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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