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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잡지왕 ''소년 점프'' 성공신화 파헤쳤다

입력 : 2007-04-30 11:16:00 수정 : 2007-04-30 11: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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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년 점프'' 전 편집장 자서전 번역 출간 ■만화 제국의 몰락/니시무라 시게오(西村繁男) 지음/정재훈 옮김/스튜디오본프리/1만원
‘마징가 Z’ ‘드래곤 볼’ ‘슬램 덩크’ 등 수많은 히트작을 양산한 세계 최대 만화 제국의 심장, ‘주간 소년 점프’의 전 편집장 니시무라 시게오의 회고록. 40여 년간 일본 만화계를 급성장시킨 명작들을 발굴, 만화잡지 주간판매량 653만 부라는 기적에 가까운 기록을 달성하기까지의 이야기와 정점의 순간들, 그리고 신화의 시기가 끝나 몰락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준다.
만화 문화를 일본의 대표적인 대중문화로 이끌었으며, 더 나아가 거대화된 만화잡지가 대중을 움직이는 매스미디어로서의 파워까지 지닐 수 있음을 보여준 ‘소년 점프’. 그야말로 ‘만화 제국’이라는 칭호가 어울릴 ‘점프 제국’ 건설에 바쳐진 ‘주간 소년 점프’ 팀 스태프들의 신념과 열정에 대한 이야기를 만나볼 수 있다.
▲만화 제국 소년 점프의 영광과 몰락
월요일 아침, 일본 지하철의 풍경은 다른 날과는 다르다. 지하철은 ‘소년 점프’로 만원이기 때문이다. 아침뿐 아니라 저녁에도 귀갓길에 ‘소년 점프’를 사가지고 들어가며 보는 사람들이 많다. ‘소년’ 자가 붙은 이 잡지에 열중하는 사람은 백발의 노신사도 있고 짧은 치마의 여학생도 있다. ‘소년 점프’의 발행 부수는 2006년 기준으로 약 295만부 정도로 추정된다. 경쟁지인 ‘소년 매거진’의 발생 부수와는 박빙의 차이일 뿐이지만 ‘소년 매거진’이 나오는 수요일의 지하철 풍경을 보면, 왜 그럴까? 확실히 ‘소년 점프’가 나오는 월요일 아침과는 그 열기에 차이가 있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두툼한 만화 잡지를 들고 있는 일본의 지하철 풍경은 미디어를 통해 자주 소개되어 이제 우리에게도 낯선 것이 아니다. 그런데 과연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잡지는 어떤 것일까? 만화 왕국 일본에서도 ‘전설’로 통하는 만화 주간지 ‘소년 점프’가 바로 그것이다.
마징가Z, 북두의 권, 시티 헌터, 근육맨, Dr.슬럼프, 드래곤 볼, 슬램덩크, 고스트 바둑왕, 데스 노트, 원피스에 이르기까지 연재 당시 엄청난 사회적 파급력을 끼쳤던 수많은 히트 만화들의 출생지이자 전국적으로 300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로 하여금 월요일 아침을 손꼽아 기다리게 만드는 ‘소년 점프’의 성공 비결은 무엇일까?
‘소년 점프’관련자들은 이 질문에 대해 정답을 하나 가지고 있다. 그것은 ‘소년 점프’에 연재되는 만화들에는 ‘우정, 노력, 승리’라는 키워드가 들어있기 때문이라는 것. ‘소년 점프’의 발행사인 슈에이샤(集英社)는 매년 주요 독자인 초등학교 5학년에서 중학교 2학년을 상대로 ‘가장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가장 기뻤던 것’에 대해 앙케트를 하는데 언제나 위의 세 가지 키워드가 상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소년 점프’에 연재되는 만화들은 모두 이 중 한 가지는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 점프’의 또 한 가지 성공 비결은 상식을 뒤엎는 새로운 시도로 기존 만화계를 뒤흔들고 ‘소년 점프’만의 고유한 시스템을 정착시켰다는 것이다. 만화 주간지의 선발 주자였던 쇼각칸(小?館)의 ‘소년 선데이’나 고단샤(講談社)의 ‘소년 매거진’보다 늦게 창간된 ‘소년 점프’는 이러한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알려지지 않은 무명 신인을 발굴해 과감히 등용하는 한편, 아무리 유명한 작가의 작품이라도 독자 투표에서 인기가 없으면 조기에 연재를 중단시켰다. 또한 ‘소년 점프’에 연재하는 작가들은 다른 잡지에는 연재하지 못하도록 전속 계약을 맺었다. 이렇게 해서 다른 만화 잡지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컬러를 만들어 간 것이다.
이러한 ‘소년 점프’만의 도전적이고 과감한 시도들은 마침내 지난 1995년 초, 주간 발행 부수 653만 부라는 초유의 대기록을 달성해낸다. 우리나라 잡지의 최고 발행 기록이 약 40만 부 정도이고 만화 잡지로는 전성기 때의 ‘아이큐 점프’가 20만 부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소년 점프’의 기록은 일본이 만화라는 문화의 최전성기를 달리며 쌓아올린 전인미답의 금자탑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는 일본 만화 산업의 초창기부터 최전성기에 이르기까지 주도적인 역할을 맡아왔던 만화 주간지 ‘소년 점프’의 편집장을 역임한 니시무라 시게오(西村繁男)가 기록한 소년 점프 만화 제국의 탄생과 성장, 그 신화의 창조에서 몰락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장대한 회고록이다. 또한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의 복구기로부터 고도 성장기, 버블경제의 전성기와 붕괴기에 이르는 일본 근대사회에서의 인간관계와 비즈니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만화가 전쟁의 폐허 속에서 헐벗은 아이들의 유일한 오락거리로 사랑 받았던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신문사 계열 대기업의 독점 하에 있던 주간지 시장에 전문 출판사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진출하던 시절의 이야기라든가 같은 출판 그룹 내에서도 기득권을 갖고 있던 기존 월간지 편집부와의 미묘한 대립과 경쟁을 극복하고 주간 만화잡지를 창간해내기까지의 모험담 등은 여기 나오는 만화가의 이름이나 작품 제목을 모르는 사람들이라도 매우 흥미진진하게 읽어 나갈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 책에는 ‘앞만 보며 신나게 일한 좋았던 시절’의 이야기만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선발 잡지와의 경쟁 관계 때문에 엄청난 리스크를 감수하며 무명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여 마침내 일본의 대표하는 최고의 작가들로 키워가기까지의 과정에 수반되었던 필자의 인간적 고뇌와 갈등도 그려져 있으며, 학생운동과 노조운동이 사회를 휩쓸던 시기에 소년 점프 제국 내에서 벌어진 스태프 간의 대립과 극복의 역사가 긴박하게 펼쳐지기도 한다. 또한 시대의 흐름에 따라 만화가 사회에 미친 영향 등 일본 만화와 일본 사회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는 부분과 653만 부라는 역사적인 대기록을 수립한 후 자만에 빠진 소년 점프 제국이 마치 과거 로마 제국이 그랬듯이 서서히 몰락해 가는 과정의 묘사에 이르러서는 과연 일본 만화 역사의 산 증인이 기록한 현장 기록다운 무게감이 확실하게 느껴진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하여 불모지와도 같은 분야였던 만화 비즈니스의 개척에서 폭발적인 산업 팽창과 기적적인 기록 수립에 이르는 장대한 길을 열정적으로 달려가며 감히 꿈조차 꾸지 못했던 정점을 정복했던 필자의 기록을 통하여 일본 만화의 살아있는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을 것이며, 미디어의 기본이 되는 활자와 종이 매체의 탄탄한 기반 위에 세계 정상의 콘텐츠 대국으로 우뚝 선 일본의 예를 통하여 새로운 정보와 콘텐츠 창출의 루트를 과도하게 IT와 인터넷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현실을 돌아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책 ‘만화 제국의 몰락’은 단지 일본 만화 업계 내부의 이야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만화 제국 ‘소년 점프’의 흥망사를 통하여 최근 경기 불황과 만화 잡지의 잇단 폐간이라는 악재로 인하여 급격히 몰락한 우리 만화 시장에 대해 반면교사 역할을 해줄 귀중한 한 권이라 할 수 있겠다.
조정진 기자 jjj@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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