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은 흡수·반사해 현실선 불가능 학생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투명인간이 돼 시험문제지를 훔쳐 보거나 평소 좋아했던 연예인을 가까이서 바라보는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이처럼 투명인간은 인간의 상상력을 자극하기 때문에, 이를 소재로 한 소설이나 영화도 많이 나왔다.
이들 소설이나 영화는 과학적으로 투명인간이 가능한 일인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실제 생물체를 이루는 분자가 투명하게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 또 우리가 별 생각 없이 쓰고 있는 ‘투명하다’는 말도 빛의 종류에 따라 달라지는 등 한 가지 뜻으로 정의하기가 힘들다. 그렇다면 과학적으로 ‘투명하다’라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100% 투명한 물체는 있다? 없다?
빛이 어떤 물체를 100% 통과하면 우리는 그 물체를 완전히 투명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100% 투명한 물체는 존재할 수 없다. 넓은 거울 두 개를 마주보게 한 뒤 가운데에 물체를 놓으면 이론상 무수히 많은 반사상이 생긴다.
하지만 실제로 개수를 세어 보면 15개 정도가 넘어가면 어두워서 숫자 세기가 힘들어진다. 이는 거울의 유리가 빛을 일부 흡수해 여러 번 거울에 반사될수록 점점 어두워지기 때문이다.
또 범죄 영화를 보면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만 안에선 밖이 보이지 않는 유리창이 있는 방에서 용의자를 취조하는 장면이 나온다. 이때 밝은 방에 있는 용의자 눈에는 거울에서 50% 정도 반사된 자신의 모습만 보이고, 거울 뒤의 어두운 방에선 나머지 50% 정도의 밝기로 용의자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즉 밝은 곳에서 보면 불투명한 거울이지만 어두운 곳에서 보면 투명한 유리의 역할을 하는 경우다.
따라서 아무리 투명해 보이는 물체라도 일부 빛을 흡수하면서 동시에 반사하기 때문에 100% 투명한 물체는 있을 수 없다.
#적외선·자외선이 기준일 때는?
우리가 ‘빛’이라고 할 때는 흔히 가시광선만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적외선이나 자외선을 기준으로 할 때도 투명하다는 말을 똑같이 적용할 수 있을까.
생활 속에서 적외선을 활용한 과학기술을 많이 볼 수 있는데, 텔레비전 리모컨이 좋은 예다. 버튼을 누르면 리모컨 앞 부분에서 적외선이 나오고 텔레비전의 적외선 신호 수신장치가 이를 받아 작동한다. 이 장치는 신호를 정확히 수신하기 위해 가시광선에는 불투명하지만 적외선에는 투명한 판으로 가려놓아 가시광선을 차단한다.
또 맑은 유리는 가시광선에 투명한 편이지만 자외선에는 전혀 다른 경우가 많다. 유리로 만든 온실엔 식물이 광합성하는 데 필요한 가시광선은 들어오지만 자외선은 잘 투과되지 않는다. 유리가 자외선에는 투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여름에 많이 쓰는 선글라스는 가시광선과 자외선에 모두 불투명하다. 자외선을 그대로 투과한다면 불량 선글라스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절대 사용해선 안 된다. 선글라스를 쓰면 인간의 눈은 밖이 어둡다고 판단해 동공이 크게 열리는데, 이때 불량 선글라스를 착용했다면 자외선이 그만큼 눈에 많이 들어가 인체에 해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위성통신 등에 이용되는 카세그레인 안테나(Cassegrain Antenna)의 모습. 눈으로 보면 구멍이 뚫려 있지만 전파를 잘 모아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에 전파의 입장에서 본다면 거울과 같이 전혀 투명하지 않은 물체가 된다. |
#‘X-선’과 전파가 기준이라면?
병원에서 X-선 사진을 찍을 때 필름이 들어 있는 큰 판에 몸을 완전히 밀착한 뒤 X-선을 잠깐 쪼여주는 식으로 촬영한다. 이때 사용되는 판은 우리 눈에는 불투명한 재질이다.
하지만 X-선에는 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야 하는데, 만약 X-선이 판을 통과하지 못하면 촬영 자체가 불가능하다.
촬영 후 판 속에 들어 있는 필름을 현상하면 뼈가 하얗게 나타나는데, 이는 X-선이 뼈 부분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뼈는 X-선에 불투명한 편이지만 근육이나 피부는 X-선에 투명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전파의 경우엔 어떨까.
부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자레인지는 전파로 음식을 데우는 장치다. 전자레인지가 작동할 때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으니 전자레인지의 문은 어느 정도 투명하다.
하지만 전파도 함께 전자레인지의 문을 통과해 버린다면 바깥에 있는 물체도 가열해 버리는 위험한 상황이 닥칠 수 있다. 그래서 전자레인지의 문은 가시광선에는 투명하지만 전파에는 불투명한 재질로 만들어진다.
전파 중에서도 파장이 길 땐 엉성한 철제 구조물을 통과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 원리를 응용한 것이 천체를 관측하기 위해 세우는 안테나다.
천체 관측 안테나는 머나먼 우주에서 날아오는 전파를 수신하기 위해 접시형태의 넓은 반사판을 설치하는데, 수신해야 하는 전파의 파장이 길면 반사판을 금속 막대기로 엉성하게 엮어 놓아도 전파를 잘 모아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 눈엔 이런 반사판이 구멍이 숭숭 뚫린 엉성한 물체로 보이겠지만 전파의 입장에서 거울처럼 틈이 없는 물체가 된다.
따라서 우리가 무엇에 투명하다고 말할 때는 ‘어느 영역의 전자기파에 어느 정도 투명하다’고 하는 것이 과학적으로 제대로 된 설명이다. 즉 우리가 눈으로 보는 기준만으로 무엇이 투명하고 투명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엄밀히 말해 진실이 아니다.
/안종제 영신고 물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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